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표정과 신호를 해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그것들의 도움으로 일상적이고 피상적인 것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상에 눈뜨게 되고, 지식의 차원으로 인식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볼 수도 있게 된다.
하나의 조각품, 건물의 기둥 하나하나, 계단이나 난간에 새겨진 숫자, 의복의 색깔 등에는 그것들을 만든 사람이 숨겨놓은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흡사 보이지 않는 세계의 비밀문서처럼 표정이나 숫자의 배열은 모든 존재의 초월적 질서를 보여준다.
자연은 모든 것이 공허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표정이다. 아무리 문명화되더라도 자연의 세계에 데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깊은 깨달음의 세계에서 나오는 신비한 메시지로 세상에 새겨지는 상징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읽지도 쓰지도 못했지만 신앙처럼 자연의 문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불경이나 성경의 비유나 진리를 무미건조한 르포 기자 정도로 읽어치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종교적 전설을 하늘의 계시로 믿었으며, 자연의 섭리가 우리를 향한 경과와 약속을 표현한다고 생각하고 믿고 받아들였다.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있기 때문이며, 우리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세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적인 입장은 아침 일찍 산에 올라가거나 바닷가에서 밤새 세상을 숨겨주던 어둠을 밝히며 기적처럼 떠오르는 태양의 힘찬 솟아남을 보고 느끼는 감동적인 일상이기도 하다. 그 순간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정신의 눈이 떠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것은 어떤 얼굴에서 보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마음 속에서 담고 있던 수많은 삶의 의문들이 이해되고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에서다. 그런 물음들은 종교적인 생활만이 아니라 믿음과 학문에도 관련된 질문들이었다.
그런 깨달음의 순간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박사들이 가르쳐줄 수 있는 것보다도 더 큰 의미을 지닌다. 인공지능이 바둑기사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내 삶의 의문에 대해 역사와 미래에 대해 가르쳐주기도 한다.
우리가 제대로 사용하지도 않고 무의식에 쌓아놓은 모든 영적 능력들을 철저하고 강력한 믿음으로 되살려내는 힘을 회복하고, 그 힘을 통해 영혼의 초월적 깨달음과 평화를 경험한다. 꿈속에서 처럼 어떤 때는 뜨거운 무엇이 심장을 꿰뚫고 지나가기도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보편적 능력과 초월적 능력이 상호 협력하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런 과정은 식물의 광합성 작용과 비슷하다. 푸른 잎이 태양의 빛 에너지를 받아 자신의 조직 안에서 동화시켜 창조적 삶의 에너지로 변화시켜 생명을 왕성하게 한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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