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한 해의 끝물이 아니라 내 인생의 끝물이라면 아마도 한없이 자유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을 부러워하며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아침마다 내가 5~6시 사이에 빠져나오는 이유는 그저 사람들과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나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아침 아파트 단지의 고즈넉하고 습하고 약간 무거운 듯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너무도 서로 다른 분위기에서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며 서로가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에 무척 흥미를 느끼고 있다.
우리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 바탕은 사랑이다. 그래서 주민들끼리는 언제 만나도 사랑은 두 배, 미소는 세 배로 전하고 받기도 한다.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가 어디 다른 지역에 가지 않고 우리 동네에서도 여행자 기분을 낼 수 있다.
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멋진 식당이나 술집이 아니라도 자신이 살고 싶었던 곳의 문화나 생활 방식에 완전히 빠져들어야 하는 일이다. 물론 말로 대화하기도 하지만, 진지한 대화는 언제나 어렵다.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것이 몸으로 하는 대화다.
미소와 웃음은 어쨌든 명사와 동사와 형용사보다 더 큰 소리로 전해지고, 그런 몸의 대화를 통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받는 스트레스는 누구나 어디서나 상당하다.
내가 가슴이 그리워하는 곳으로 달려가 사람들을 만날 만큼의 강한 체력과 열정적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우리가 공원 음수대에서나 휴게실에서 마실 수 있는 수돗물만 하더라도 얼마나 대단한 특권인가 생각한다.
세상에 오염된 물 때문에 고생하고 병에 걸리고 생사가 나뉘는 위험 속에서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어려움 없어 보이는 삶의 환경에서도 마약에 취해 인생을 망가뜨리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그렇게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거나 바라보면 자식에게 깨끗한 물을 먹이지 못하는 부모나 자식이 마약을 하는 것을 막지 못한 부모가 범죄자는 아니지만, 또 자식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방식이 잘된 일도 아니다.
그런 삶을 바라보는 우리들도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판단하는 것도 편하지 않는 일이다. 가난이나 자존감 결여가 그들이 처한 심각한 현실일 뿐이다. 그런 삶에 비하면 내 삶의 모든 방식은 말할 수 없는 특권이 주어진 소중한 것이다.
내가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어린 소아암 환우들과 부모들의 한과 불안하고 고통스런 마음을 지켜보면서 과연 한 인간으로서 다른 누군가의 선택을 판단할 권리가 나에게 있기나 한 것일까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밤이면 깊고 무거운 생각으로 지새우고, 낮이면 그 생각들을 몸으로 체험해 보는 것이다. 그럴수록 자유와 경제, 민주주의와 경쟁, 가난과 우정, 등산이나 달리기 같은 운동과 소박한 삶, 사랑과 감사를 더 많이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올해 마지막 화요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