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도 그림자가 있다
소나기 한차례 지나가고
과일 파는 할머니가 비를 맞은 채 앉아 있던 자리
사과궤짝으로 만든 의자 모양의 그림자
아직 고슬고슬한 땅 한 조각
젖은 과일을 닦느라 수그린 할머니의 둥근 몸 아래
남몰래 숨어든 비의 그림자
자두 몇 알 사면서 훔쳐본 마른 하늘 한 조각
1)제가 낯에 잠깐 병원에 들렀을 때 이 시를 보시구서
이렇게 쉽게 쓰라고 이렇게 써야 시라고
말씀 하셨는데 사실 이 시가 그렇게 쉬운 시는 아닙니다.
가만히 보면 어려운 말 하나 없어 아주 쉬운 듯 하지만
시인은 슬쩍 시적 장치를 감추고 있어요.
물론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현대시의 난해함 보다는
훨씬 쉬운 시지만 그러나 그렇게 쉬운 시인지
하나 하나 뜯어 볼까요.
비에도 그림자가 있다
-벌써 제목이 범상치 않습니다.
쉬운 말인 듯 하지만 흔히 쓰는 말이 아니죠?
시인들은 이렇게 남들이 흔히 쓰는 말은 죽어도 쓰기 싫어 하지요.
행여 남들이 흔히 쓰는 말을 시어로 선택 할 경우는
고도의 시적 장치를 숨기며 쓰지요.
본문으로.
소나기 한차례 지나가고
과일 파는 할머니가 비를 맞은 채 앉아 있던 자리
사과궤짝으로 만든 의자 모양의 그림자
- 여기까지는 행상(측은)하는 할머니의 비 젖은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눈 여겨 볼 시어로는 소나기, 사과궤짝, 비 젖은 할머니... 시어들이 측은 하지요?
아직 고슬고슬한 땅 한 조각
젖은 과일을 닦느라 수그린 할머니의 둥근 몸 아래
남몰래 숨어든 비의 그림자
-여기서 두 번째 모습이 그려지나요?
비 그친(안도)뒤의 할머니 주변 모습 말입니다.
마른 땅, 닦음에 말라가는 과일모습, 사라진 비,
처음 측은한 이미지에서 다소 안도의 모습을 그려 내고 있지요.
여기까지 쉬운 시어들이지만 시인은 충분히
스케치를 끝내고 덧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덧그림이 그리 쉽지 많은 않아요.
보세요. 이 부분을 <젖은 과일을 닦느라 수그린 할머니의 둥근 몸 아래>
대단한 시적 착상입니다.
둥근 과일=할머니 몸의 둥긂(늙음)... 대단한 발상이지요?
그냥 쉽게 써 내려간 듯 하지만 이미지의 연결이
고도의 시적 장치가 엿보이는 상당한 수준의
솜씨가 번뜩이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이 시의 백미를
마지막 행에다 두었습니다.
자두 몇 알 사면서 훔쳐본 마른 하늘 한 조각
-자, 화자는 자두 몇알 샀다고 했습니다.
큰 사과도 배도 아닌 작은 자두 몇 알이라고 했습니다.
화자가 산 자두 몇 알에서 어떤 富가 떠 오르나요?
그렇죠. 할머니의 쓸쓸함에 편승하는 화자.
시인은 다 이런 부분을 생각하며 고른 시어입니다.
그러면서 <훔쳐본 마른 하늘 한 조각> 이라고 능청 떠는
이 시인의 노련함.
이 부분에서 우리는 이 시인의 시력을 엿볼 수 있는 게지요.
마른 하늘 한 조각은 화자가 행상하는 할머니를 위한 희망이요 바램.
그러면서 이 시를 읽는 모든이의 희망으로 이끌고자 하는
시인의 시적 내재장치가 여기 시어 몇 자에 숨어 있지요.
촌시락게 더 까발려 말씀드린다면
"야 하늘아, 비좀 내리지마라. 불쌍한 할머니 장사 못한다."
ㅋㅋㅋ 시 맛 나나요?
시는 메타포가 있어야지요
쉬운 듯 하지만 은유의 감칠맛 나는 시.
존경하고 사랑하는 원장님도 제 생각과
일치하게 이해 하셨는지요?
저 역시 아직 미천 합니다만 제 말씀을 듣고
다시 이 시를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또 내가 미처 잡아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이 그려지리라 생각됩니다.
좀 잘난 척 했는지 모르겠지만
- 시 한편을 읽기는 쉬워도 이런 저런
의미를 숨기며 시 쓰기란 뼈를 깎는 고통이랍니다.
남이 써 놓은 시를 가지고 뭐라 씨부렁 거릴 수 는 있으나
정작 써 보라하면 개발 새발 오리발...
그리고 한 말씀 덧붙인다면 눈에 귀에 익은 시어로
시를 쓴다는 것은 그것은 이미 시라기 보다
공해적 낙서이지요.
두고두고 볼 수록 새록새록 새로운 맛이 나는
시, 그것이 좋은 시입니다.
오래된 된장처럼...
시 쓰는 초보자들이 제일 조심해야 할 단어 중
절대 쓰지 말아야 할 단어... 그리움, 사랑, 아버지(가족), 옛 추억,
가능하면 쓰지 말아야 할 단어...자연, 어머니, 등등입니다.
이 밖에도 많이 있습니다만 벌써 이런 단어가 들어가면
"아, 공해. 즉 낙서구나."하고는 바로 버려 버립니다.
물론 절대적은 아닙니다.
~~아 졸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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