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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 성 일 : 2004.05.12	+ 작 성 자 : 정병선
+ 제 목 : 閑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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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청룡열차는 허공에 매달린 채 잠이 들고 동물원 옆 미술관 가는 길위로 오월의 투명한 햇빛이 소리 없이 부서진다. 가뭄타는 야윈 호수 가장자리 날개접은 재두루미 한쌍이 긴 고개 뽑아 먼산바라기 하는데 떠날 날 잊어 텃새로 망명한 청둥오리 몇마리가 앙상한 바닥을 드러낸 물속을 겨우 자맥질하며 깩깩거린다. 책을 읽었다. 대공원 호숫가 벤취에 앉아 어지러운 시간들을 대책없이 세고만 잇었다. 소란스런 꽃이 지자 소리없이 피어난 잎 어느새 녹음이 번진 산들이 검은 그림자를 물위에 드리운다 오전 11시 빈 전철을 타고 서울 나들이를 했다. 무교동 북어국집 지난 밤 쓰린 속 달래려는 월급쟁이들이 점심 이른 시간부터 장사진을 이루던 곳 12시 30분인데도 겨우 서너 명이 와이셔츠 바람에 구겨진 얼굴로 담배를 빨아대며 반쯤 죽은 간과 완전히 지친 위와 창자를 적실 뽀오얀 북어국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내식당 밥에 질렸는데 내가 찾아와 오랫만에 외식하게 되었다고 아이처럼 웃으며 좋아하는 친구와 조흥은행 본점 뒷골목 간판도 없는 실비식당에서 1인분에 4천원 하는 제육볶음 정식으로 한적한 점심을 먹었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무교동 북어국집앞 골목길에 긴 줄을 만들고 술내 덜 가신 피곤한 얼굴로 북적거리며 1인분에 6천원이나하는 위안과 평정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제육볶음 상추쌈 싸서 볼이 메어지도록 씹으며 소주 한잔 반주로 곁들여 호기로운 점심 즐기던 실비식당 가득 메웠던 낯익은 얼굴들은 대체 어디로 떠나 가버린 것일까. 재수하는 큰놈 먹일 종합 영양제 사러 종로5가 보령약국에 갔다. 동네 약국의 반값이면 살수 있기 때문에 모처럼 나온 김에 종각에서 종로5가 까지 걸어서 갔다. 시간을 재며 살던 시절의 기억이 아득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기에는 이미 지쳐버렸으므로 뒷짐을 진 채 느릿느릿 걸어서 갔다. 동대문 광장시장을 지나서 갔다. 화요일인데도 문을 닫은 가게가 즐비했다. 집화를 늘어 놓은 노점상 할머니가 스티로품 그릇에 담긴 천원짜리 먼지섞인 비빔밥으로 국물도 없이 늦은 점심을 들고 있었고 목이 막힐까 봐 갑자기 내 목이 메여 가슴이 답답했다. 찾는 이 없는 짐꾼 서너명이 문닫은 가게 차양아래 그늘을 찾아 낡은 모자로 깊숙히 얼굴을 가리고 피곤한 노동에 익숙한 허리보다 식구들 생각에 때아닌 찬 바람 횡하게 일어 더 아리고 쓰린 가슴을 지게위에 길게 누이고 있었다. 어느새 2천원이나 오른값에 종합영양제를 사고 돌아오는 길 그렇게 시간을 죽이려 했는데 해는 아직 중천에 떠 있고 봄낮은 참 길기도하다. 시간을 죽이는데 영화보다 더 든든한 공범자가 어디에 있으랴! 아껴 두었던 영화 초대권 한장이 구원처럼 머리를 스쳤다. 명동에 있는 멀티플렉스 상영관 3시20분에 하는 코미디 영화 극장안은 아무도 없었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한복판에서 영화관을 독차지 하고 제왕처럼 영화를 보는 이 찬란한 호사를 누려도 좋은 것인지 공연한 죄를 짓는 듯하여 뒷덜미가 자꾸 간지러웠다.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났다. 하품을 심하게 한 탓이다. 그러나 아무리 영화가 재미있고 우스워도 그렇지 텅빈 극장에서 미친놈 처럼 혼자 낄낄거리며 웃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웃음은 전염이라는데 그것을 옮길 사람도 없는 데 나혼자 배를 잡고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가 . 그나저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동대문 광장시장을 바쁘게 오가며 사람들을 부르던 신명에 들뜬 목소리들은 어느 깊은 산이 메아리도 남기지 않고 거두어 가 버렸을까. 막걸리 한잔 힘으로 산처럼 큰 짐을 지고 익숙한 걸음으로 미로를 누비거나 2,3,4,5층을 다림쥐처럼 경쾌하게 오르내리며 때절은 목수건에 쏟아지던 그 건강한 땀들은 어느 하늘로 증발해 버려 구름이라도 된 것일까. 팝콘이나 콘칩 빛깔고운 음료수나 카페오레 한잔들고 고개를 서로 기대고 땀이 흥건하게 배도록 손을 꼭잡고 쿵쾅거리는 가슴소리 들킬까 봐 영화가 눈에 담기지 않았던 그 수많은 풋풋한 사랑들은 모두 어디로 떠나갔길래 이 눈물나도록 웃기고 재미나는 영화도 보러 오지 않는 것일까 서로가 납득할 수 없는 이별이라도 하고 또 당하여 낯선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것일까. 극장을 나오니 5시 30분 저주스런 해는 서쪽으로 걸음을 조금 옮겼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빌딩사이로 터진 도회의 하늘 한쪽에 요지부동으로 버티고 있어 낮은 계속되고 있었다. 저놈의 해가 져야 어두워지고 비로소 밤이되고 그래야 억지로 잠이라도 자고 제대로 된 꿈을 한번 시도라도 해 볼텐데 봄낮은 혼자 보내기에 너무 길다. 그나 저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건조주의보 내린 이 넓은 도시에 감당할 수 없는 봄낮을 내게 맡기고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길고 긴 봄낮과 부질없는 싸움 그만두고 나도 곧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해는 아직 서쪽 하늘에 온전하고 봄낮은 길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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