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생맥주, 이건 또 뭔소린가? 이번에 내게 되는 책의 제목이다.
이 책은 원래 무협소설 주인공 이름을 많이 닮은
중국의 駱云成 이라는 분이 노자의 도덕경을 주식투자에 응용하면서 쓴 것인데 원제는 노자 고경(股經:투자경)이었다.
출판사의 제의로 이 책을 가져다 씨름을 시작한 지가 지난해 1월이었으니 벌써 해가 한번 온전히 바뀌고도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의 초입에 들어섰다.
노자와 함께 한 1년 6개월은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았다. 오죽했으면 중국 한대 말기에 『장자』, 『주역』과 함께 심오하고 난해한 책이라는 의미로 삼현(三玄)이라고 일컬어지기까지 했을 까? 그런 고전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투자의 세계에 응용해 보겠다고 겁없이 달려든 것이다. 벌을 받아 마땅한 짓을 한 셈이다.
원고를 써 나가며 나는 수백번도 넘게 나의 淺學非才함을 한탄했고 출판사의 제의를 쉽게 수락한 경솔함을 자책했으며 무변광대한 노자의 정신세계를 한없이 외경했다.
원래 능력이 부족한데다 천성마저 게을러 지난 5월하순에야 겨우 탈고하여 출판사에 넘기니 이번에는 제목이 문제다. 몇가지 그렇고 그런 제목을 주고받다가 쉽게 결정이 나지않자 출판사에서는 고심끝에 출판광고기획사에 의뢰하기로 했고 거금 300만원을 들여 얻은 제목이 바로 "노자와 생맥주"라고 하는 황당한 이름이었다.
그럼 왜 하필 생맥주냐? 노자가 생맥주를 즐겨 마셨는가? 병맥주는 아니 마셨는가? 피쳐로 마셨는가? 500cc 잔으로 마셨는가? 그때도 생맥주가 있었는가?
점잖지 못한 제목이 내심 불만이어서 여러가지 의문문으로 제목이 뜻하는 바를 물어 보니 "(생)초보도 (맥)을 짚는 (주)식원리"의 앞글자를 딴 조어란다.
그래도 그렇지, 도교사상의 창시자인 노자선생을 욕보이는 것 같아 볼 멘 소리로 좀 점잖은 제목으로 정하자고 항의를 했다. 예를 들어 "노자에게 배우는 81가지(도덕경은 모두 81장으로 구성되어 있음) 투자지혜" 같은 것은 어떻냐고 하면서...
그러자 출판사 사장님 왈! "그것 밋밋해서 안됩니다. 그런 제목으로는 책 안팔립니다. 요즘은 무조건 튀어야 사는 세상입니다. 점잖음이 밥 멕여준답디까?"
이 일갈에 나는 머쓱해졌다. 댓발이나 나왔던 입도 쑥 들어가고 말았다.
하긴 대통령도 매일 못 튀어서 안달하는 세상이니
자기는 튀면서 남은 튀면 안된다고 경고하면서
권력의 힘으로 튀는 것을 독점하는 세상이니
거금 3백만원을 들여 튀는 제목을 산 출판사 사장의 심정이 오죽 절박했으랴!
그러나 원래 생각이 깊지 못하고 속에 든 게 없어 허한자가 궤변과 요설로 튀는데만 온 힘을 쏟고 별 내용이 없는 책이 제목만 요란하게 튀는 것이 눈가리고 아웅하며 살아가는 인간세의 오랜 습성이거니 긍정하고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아직 세파에 오염이 덜 된 순진한 심성이 녹녹하지는 않다.
결국 노자는 튀어야만 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세태덕분에 생맥주와 만나게 되었고 책의 내용과는 아무 관련도, 의미도 없는 "노자와 생맥주"는 하얀바탕에 붉은 글씨로 책의 한 가운데를 기어이 차지하게 되었다.
아! 노자는 날 용서할까? 아무래도 께름직하다. 졸지에 나는 봉이 김선달이 되고 만 것은 아닌지? 서점에서 노자를 내세워 생맥주를 파는 한심한 인간아 되고 만 것은 아닌지...
어쨌든 책은 많이 팔려야 출판사도 저자도 좋다는 출판사 사장님의 명쾌하고 현실적이며 그만큼 확실한 경영철학앞에 내 알량한 자존심이랄까! 도덕적 양심이랄까? 하는 것과 대사상가에 대한 무한한 외경심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아! 부끄럽고도 한심하다. 노자의 그 빛나는 지혜를, 그 오묘한 사상을 주식투자에 접맥한다는 핑계만으로 투자론적으로 자의적인 해석을 감행하여 훼손. 왜곡한 바가 적지 않거늘, 그것으로만 이미 씻지 못할 죄를 저질렀거늘 제목마저 노자와 생맥주로 정하였으니 우화등선하여 속세를 떠난지 이미 3000년은 족히 흘렀을 노자를 꿈에서라도 만나면 무어라 용서를 빌까?
감히 바라건데, 노자여!
세상과 시장과 사람이 얽히고 뒤섞여 서로 길항하고 삼투한 결과로 시세가 잉태하느니 그 이치와 섭리가 그대가 일찍 갈파한 5000자의 지혜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니 무모함을 용기로 삼아 책을 엮게 된 아래의 소이연을 읽고 부디 이 후학의 철없음과 무례함을 해량하시라!
"20여 년을 증권업계에 종사하면서 투자세계의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목격하고 체험할 수 있었다. 비관과 낙관이 교차하면서 갈라지는 성취와 좌절의 원인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것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았지만 결국은 사람의 문제로 귀결됨을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시세에는 거짓이 없으며, 잘못은 사람이 저지른다.’는 경구처럼 투자의 마지막 성패는 오로지 투자자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치를 터득한 것은 이 책을 엮는 계기로 노자의 『도덕경』을 투자론적인 관점에서 다시 정독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돌이켜보건대,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이익을 다투는 주식시장은 어지러운 세상과 같아서 항상 시비가 벌떼처럼 일어나고 이해와 득실이 고슴도치 바늘 서듯 하는 살벌한 곳이었다. 그러므로 세상이 치세(治世)이든 난세(亂世)이든, 주식시장은 늘 ‘난세의 시장’일 수밖에 없고, 난세의 시장 이란 곧‘아수라의 장(場)’과 크게 다르지 않아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만인은 만인의 적으로서만 존재의미를 가질 뿐이다.
시세의 변화에 따라 적의 개념은 포괄적이고 피아(彼我)의 구분은 모호하다. 때로는 자기 자신은 물론, 깊은 헤아림 없이 시장의 표피적인 상황에 휘둘려 저지르는 감성적인 투자행위 그 자체도 감당하기 힘든 큰 적이 되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시세를 따라, 수익을 쫓아 시장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다보면 어느덧 몸은 곤고(困苦)하고 마음은 산란해져 판단은 짙은 안개 속을 헤매듯 흐려지기 일쑤다. 주가상승기에는 분별없는 욕심이, 침체기에는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와 좌절과 체념이 견지하고 있어야 마땅한 합리와 이성의 눈을 가려 실패와 좌절의 구렁텅이에 스스로 몸을 던지기 일쑤다. 반복적으로 당하면서 늘 후회하지만 막상 닥치면 무엇에 홀린 듯 피해갈 수 없는 이 비극적 상황은 개인투자자들이 숙명처럼 극복하기 힘든 주식시장의 비정한 철칙이라 할 만하다. 그 어떤 정교한 매매기법이나 완벽한 투자전략도 공포와 탐욕이라는 마음속의 마물(魔物)을 만나면 철저히 무력해지기 때문이다.........(云云)
(노자와 생맥주 '들어가는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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