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나 공간에 대한 여러 가지 형이상학적인 의견들은 각각 옳다거나 그르다고 하더라도 모두 그럴 듯하게 근거를 만들어 주장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지성이 제대로 작동하는 영역 밖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근대화 이후 우리의 지적 탐구가 가능한 영역을 대개 두 가지로 분류해 왔는데, 이성과 사실의 진리(라이프니츠)라거나 관념과 사실의 문제(데이비드 홈트)로 나누고 있다. 칸트는 분석적 판단과 종합적 판단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 모든 근거가 바로 수학과 논리 및 자연과학만이 주장의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올바른 연구 영역이며, 이 두 영역에 속하지 않은 연구나 책들은 모두 환상을 좇으며, 사기와 기만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모두 불살라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도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불살라야 한다는 책들이 바로 신학과 형이상학 서적들이었다. 분석판단이라는 한 문장에서 술어의 개념이 주어의 개념에 포함되어 있어서 참과 거짓이 논리적으로 결정되는 판단들이다.
'어린이는 미성년자이다'는 말은 '어린이'라는 주어의 개념이 '미성년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미성년인 사람은 어린이이다'는 뜻이 되어 그 참이 쉽게 드러난다. 산수나 기하학 같은 순수 수학도 마찬가지다.
'2'는 '1+1'로 정의되고, '2+3'은 '!+!+!+!+!'이 되어 '5'의 정의에 맞게 된다. 그래서 '2+3=5'는 참이라는 논리학과 수학은 개념들 사이의 놀리적인 관계(이성의 진리, 관념들의 관계)를 다루는 엄밀하고 확실한 학문이 되는 것이다.
자연과학은 이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으 감각적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많은 주장이 그 참과 거짓을 제대로 가리 수 있다. '여름은 덥다'는 문장은 '여름'이라는 개념과 '덥다'는 개념을 종합해서 만단 종합판단이다.
우리는 이런 문장들이 참임을 감각적 경험으로 안다(사실의 진리, 사실의 문제). 그래서 자연과학도 우리가 제대로 탐구할 수 있는 영역을 연구하는 올바른 학문분야가 된다. 이런 논리실증주의자들이 힘을 얻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서양 철학은 우주의 시공간적 유무한성을 비롯한 질문들이야말로 논리학이나 수학 또는 자연과학의 문제가 아니어서 그 답변의 진위를 결코 가름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시간만 낭비할 뿐 엉터리 질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질문들은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없는 주제에 대한 문제들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물어서는 안 되는 엉뚱한 경우가 될 수 있다. 우리 인간에게 가능한 올바른 지적 탐구와 연구의 영역이 있음은 분명하고,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이 '고집멸도'의 사성제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