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月居士 出家記(1)]
오계는 불교도이면 재가자나 출가자 모두가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규범이다. 기독교의 십계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고의 선을 지향하는 종교적 가르침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서로 만나기 마련인가 보다.
'살생하지 말라(不殺生), 도둑질 하지 말라(不偸盜),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不邪淫), 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 술을 마시지 말라(不飮酒) 등을 재가5계라 한다. 출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5가지 계율이라는 뜻이다.
물론 불교의 계는 그것이 부처님과의 약속인 만큼 어김이 없어야 하지만 제5계인 불음주는 조금 해석이 다른 듯하다.
이번에 해남 두륜산 대흥사 夢山스님께서 내리신 수계증에는 술 마시지 마라는 계 대신에 술에 취하지 말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세속의 생활에서 불가피한 경우에는 술을 마시되 취하여 정신을 놓도록까지 마시지는 말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자비롭고 여유 있는 말씀이요 해석인가? 팔뚝에 연비(燃臂)(*)를 하면서 持戒를 맹세한 나는 술을 완전히 멀리할 자신이 조금 없었는데 이 너그롭고도 현실적이며 어쩌면 파격적인 제5계의 해석에 한량없는 고마움으로 안심했다.
그러나 이 제5계의 해석상 여유와 너그로움이 사실은 엄청난 번뇌와 책임을 묵시적으로강요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은 같이 계를 받은 도반(道伴)중의 한 사람으로부터 술로 인한 연쇄적(?) 파계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였다.
타율로 강제하는 것이 때로는 자율과 자유보다 더 편안할 수도 있음은 체념의 미학이 가져다 주는 힘이기도 하거니와 우리의 일상이 자율과 자유를 이성적이며 합리적으로 행사하는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물며 오랜 세월 세속의 풍진에 단련되어 굳은 살 밖힌 발바닥처럼 일상의 죄업에 무감각해 진 마음을 씻어 계를 지키고자 함에 자율과 자유가 어찌 가당키나 한 것이랴?
각설하고
옛날 친구 사이인 청년 3명이 절에서 수계식을 마친 뒤 산문을 막 벗어나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수계한 기념으로 술 한잔만 하자고 제의했다. 열흘 가까운 절생활끝이라 술이 동한 것은 당연한 이치, 3명의 불자들은 사하촌 어느 주막에서 술에 주린 배를 맘껏 채우며 수계를 자축하였다. 그러나 술은 술을 부르는 법 , 절에서 집이 가까운 친구 하나가 집에 좋은 술이 있으니 가서 2차로 한 잔 더하자고 하니 술기운에 모두 찬동하고 그 친구 집으로 달려갔다. 감미로운 가양주에 취해 갈 무렵 안주가 바닥이 났는데 때마침 살찐 암탉 한마리가 날아들었다. 얼씨구나 하고 그 암탉을 잡아 푸짐한 안주거리로 술을 마셨다, 술마시지 말라는 계를 어기는 것이 빌미가 되어 도둑질 하지 말라, 살생을 하지 말라는 계 두가지를 동시에 어기게 된 것이다.
암탉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 닭의 주인인 이웃집 여인이 속살이 비치는 속옷차림으로 찾아와서 우리 닭을 못 봤느냐고 물었다.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이 순간 이 취한 불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를 어기게 된다.)
그중 한명이 술에 취해 게슴츠레한 눈으로 속옷차람의 여인을 보니 요염하기 짝이 없는지라 솟구치는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여인을 범하니 나머지 두 친구들도 차례로 그 여인을 윤간해 버린다.(사음하지 말라는 마지막 계까지 어기게 되는 순간이다.)
수계와 파계의 경계로서 술의 마성과 야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설화다. 속세의 일상에서 술을 멀리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이 계를 지키기 위해 참는 것은 엄청난 고행이 아닐 수 없다. 어떤 가혹한 고문이 이에 비하랴.
그러나 지나친 음주행위에 잠재 된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감안하면 이 不飮酒의 계 혹은 좀 더 너슨한 듯 한 不醉酒의 계는 나머지 4가지 계를 담보하는 안전장치인 셈이다. 술로 말미암아 판단이 흐려지고 이성이 마비되어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망언과 음행, 살생과 투도까지 연쇄적으로 파계가 확산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파계의 과정에서도 불가의 緣起說이 어김없이 작용하고 있다는 냉엄한 사실에 그저 아연할 수 밖에 없다.
산문을 나서자 마자 오랜 옛 친구를 그의 고향땅에서 해후했다. 별 다른 취미도 없고 그저 마음맞는 사람과 마주앉아 술마시고 이야기하며 글 쓰는 것을 즐기는 친구를 오랫만에 만났으니 어찌 술이 빠질 수 있으랴. 다산초당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찾은 주막에서 술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나는 다소 자조적인 기분이 되어 "수계하자마자 파계하는군"하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친구는 웃으며 "수계는 파계를 전제로 하는 것 아닌가?"하고 되묻는다. 그래, 인생은 어차피 시간과 행위의 변증법적 발전과정일게다. 우리는 잔을 높이 들고 너털웃음을 한여름 뭉게구름 사이로 터진 감청색 하늘 위로 날렸다. 석양이 뉘엿거리며 서쪽 하늘에 붉고 긴 꼬랑지를 흔들자 그와 나의 얼굴에도 홍조가 드리워 졌다. 파계를 한다는 죄의식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4박5일 수도생활을 거치면서 마음 가장자리에 조그마한 자리를 튼 불자의 엄격한 일상에서 일탈하면서 얻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모든 행복한 시간은 파계 혹은 일탈의 댓가인 것인가?
산문을 나서면서 느낀 것은 승과 속이 비록 일주문 하나 사이지만 그 격차는 아득하다는 평범한 이치이지만 출가하여 수행정진 하는 생활보다 속세에 부대끼며 사는 삶이 더욱 힘들다는 말은 자못 가슴에 사무치도록 일리가 느껴진다.
수계의 감격과 다짐은 지계의 험난함을 예비한 것이기에 더욱 크고 굳은 것이리라.
언제 술로부터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새삼스레 수계와 파계의 경계로서 술의 위력을 절감해 본다. 모든 것은 찰라요 빈 것이며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 하지만 초보불자에게 제 5계 술에 취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여전히 지난(至難)하기만 하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계(持戒): 계율을 지킴
(*)파계(破戒): 계율을 어김
(**) 연비(燃臂):불교의 승려가 되는 첫번째 단계의 의식인 득도식을 치르기 위해서는 삭발을 하는 것 이외에 또 하나의 과정을 더 거쳐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연비(燃臂)라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자신의 육신도 바칠 것을 맹세하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연비에 얽힌 이야기로는 '중국 선종의 제1대 조사 (祖師)인 달마(達磨)가 불법을 간절히 원한다면 그 믿음을 보이라고 말했을 때 제자인 혜가(慧可)가 자신의 팔을 칼로 끊어서 달마에게 바쳤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 후 불법에 대한 믿음과 일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의 표징으로 팔뚝의 일부나 혹은 손가락을 불에 태우는 의식이 공식적으로 행해지게 되었다. 팔뚝의 일부분을 태우는 연비는 출가자의 경우에 예외 없이 행하는데, 득도식을 할 때 참회와 서원을 하면서 초의 심지에 불을 붙여 살갗을 태운다. 재가자의 경우에도 오계를 받는 수계식(受戒式) 때 연비를 하는데, 요즘에는 향불로 따끔하게 지지는 정도로 그친다.
|
다음글 : 
이전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