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나의 자랑스런 친구 하월곡 윤창식 교수가 쓴 글입니다. 이글은 '월간 문학세계' 100호 특집 신인문학상 수상 작품(2002. 11.)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이 너무 아름다워 여기에 감히 옮겨 봅니다. 저는 지난 주 대흥사를 다녀 오면서 그의 고향인 강진에 들려 어머님을 뵙고 하룻밤 말벗을 해드리고 왔습니다. ]
여든 두 해 - 내 어머니에게 지워진 세월의 무게는 목덜미를 옥죄고 등짝을 짓누르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허리를 타고 앉은 모양이다. 언제 마음놓고 하늘 한 번 쳐다볼 순간이라도 있었을까. 질긴 것이 사람 목숨이라 했던가. 흙을 밟고 일어 선 여린 생명이 모란꽃보다 붉게 피어나 기어코 까만 열매를 맺으면 천수(天壽)를 다했다고, 그러면 그것으로 그만인 것인가. '늙은 어미'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고작, 핏기란 핏기는 다 말라버리고 골수의 연골조직은 석회질로 퇴화된 '어머니'라는 이름 석자뿐이런가. 그 종종걸음과 잠 못 드는 노심초사의 세월들이 이제 황혼 녘 쓸쓸한 부표(浮標), 골다공(骨多孔)의 몇 조각 푸석거리는 뼈마디로 남았는가.
어머니는 외가(外家) 쪽을 닮아 허우대가 큰 분이었다. 내 어릴 적 어머니는 여느 여인네 보다 키도 꽤나 크고 허리도 튼실했다. 큼지막한 보리쌀 자루를 머리에 이고 시오리가 훨씬 넘는 길을 걸어 오일장에 내다 팔고 돌아오는 길이면, 어느새 동구 밖 채마밭에 들렀는지 한 무더기 푸성귀를 머리에 이고 '꼿꼿하게' 사립문을 들어서곤 하던 어머니 모습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아버지는 농사일은 뒷전이고 여전히 밖으로만 나돌았다. 동네 이장 일 아니면, 양반 끄트머리 문중(門中) 일을 핑계로 집안에는 거의 붙어있질 않았다. 무엇께나 뀌는 사람들이 노상 그렇듯이 아버지의 부재(不在)는 어머니에게는 몇 배나 힘든 노동을 예비하게 만들었다. 새끼들을 일곱이나 나으면서 진이 다 빠질 만도 한데, 어머니의 '힘찬 노동'은 그칠 줄을 몰랐다. 닥치는 대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길쌈을 하고 소죽을 끓이고 장작을 팼다. '완벽한 농군'을 자임한 어머니는 당신이 짊어진 노동이, 이 세상에서 나온 대가, 한국여인이 치러내야 할 무슨 제의(祭儀)라도 되는 양 억척스럽게 일에 매달렸다. 그 의식을 정성스럽게 치려야 되겠다는 의지와 단호함이 사시사철 무명 적삼 사이로 물신 배어 나왔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 땀 냄새를 좋아했다. 어머니의 땀 냄새는 어떤 화려한 여인의 값비싼 지분(脂粉) 냄새보다 황홀하고 고혹적이었다. 그 신비한 내음새 - 그 비릿하면서도 아릿한 어머니 내음은 나에게는 커다란 위안의 냄새였다. 여름 날 뙤약볕이 풍뎅이 속 날개처럼 가늘어지면서 여름의 노동이 서서히 끝나 가는 시간, 황혼이 긷든 어스름 고샅길에 호미자루를 거머쥔 어머니에게서도, 그리고 겨울이면 눈발을 헤치며 꽤나 먼 샘터로 물 길러 나갔다가 손을 휘저으며 마당으로 들어서는, 물동이를 머리에 인 어머니에게서도 예의 그 땀 냄새가 났고 나는 늘 안도했고 평안하게 잠들곤 했다.
어머니의 그러한 억척스러움은, 어머니가 베를 짜려고 베틀에 앉으면 사뭇 다소곳하고 차분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나는 베를 짜는 어머니 곁에 앉아 베가 짜여지는 과정을 유심히 살피곤 하는 날이 많았다. 씨줄 날줄, 그 숱한 직조(織造)의 얼개들을 엮어가면서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역정을 내지 않았다. 무서운 인고(忍苦) - 실이 자꾸 꼬이고 끊어지는 속에서도 꼬인 올을 다시 풀어내고 끊긴 올을 이어내는 그 인내와 섬세함에 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끝내는 그 뒤엉킨 실타래들이 한 올 한 올 서로를 받아들이며 어엿한 옷감으로 환생하는 과정을 보고 이런 것이 바로 인고 끝에 찾아오는 달콤한 노동의 즐거움이겠거니 생각했다.
어머니의 갱년기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열 아홉에 시집이라고 와서 스무 해 가까이 수도 없이 보리 고개를 넘으면서도 한 번도 몸 아파 누워본 적 없었건만, 그런 어머니도 숱한 세파의 여정에서 꼭 온전할 수만은 없었던 것일까. 어머니는 폐경기와 함께 찾아온 구안와사(안면신경마비증)로 큰 고생을 했다. 큰아들의 병질(病疾), 작은놈의 대학 실패, 셋째 딸의 틀어진 혼사, 남편의 바람, 작은 시어머니와의 어긋난 고부 관계 -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지만, 어머니는 별 내색 없이 늘 하던 일을 하느라 하루해가 짧은 줄 몰랐다. 당신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리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이 오히려 그토록 무섭게 노동에 매달리도록 만들었으리라. 기실, 그것들은 어머니의 병환을 예감케 하는 전주(前奏)들이었던 것을. 구안와사는 입이 돌아가고 한 쪽 눈에 심한 흔들림이 찾아오고 참을 수 없는 편두통을 동반한다고 한다. 약도 별로 없던 시절 - 하는 수 없이 물어 물어 찾아간 용하다는 한약방에서 몇 번 더 침을 맞아야 얼굴이 온전하게 될 것이라는 침쟁이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 값으로 보리쌀 몇 되 더 주기 아까워 어머니는 단 한 번의 설침으로 겨우 반쯤 돌아온 입을 하고도 그저 괜찮다고 막무가내 농부의 길로 다시 돌아오셨다.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편두통에 눈꺼풀이 덮일 정도로 약해진 시력, 그리고 아직도 온전히 자리잡지 못한 입 매무새를 무슨 인생의 훈장인 양 달고 사신다.
그 때의 충격으로 어머니는 더는 무거운 물건을 머리에 이고 나르질 못했고, 결국 갖가지 삶의 보따리들은 등짝으로 얹히게 되었다. 어머니는 마치 황소처럼 지게든, 쌀가마니든, 멍석이든 등에다 짊어지고 종종걸음을 쳤다. 그 때 나는 철이 들지 못했던 탓일까 - 그런 어머니의 변신을 그저 욕심 많은 노동행위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속으로 "우리 어머니는 참 힘도 세지" 하면서 터무니없게도 마음 든든해했다. 실은, 머리로는 더 이상 무거운 물건을 이고 나르지 못할 정도로 여러 곳이 망가져 버렸다는 사실을 다 커서야 알고는 내 막심한 불효를 자탄했었다.
삶의 무게가 머리에서 등위로 내려앉은 것말고는 어머니의 인생역정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어머니의 노심초사와 벅찬 노동의 갈기들을 헤집고 철 따라 꽃은 피고 지고 눈먼 세월은 잘도 갔다. 그러는 사이 일곱이나 되는 새끼들은 모두 출가하여 대처로 나가게 되었고, 아버지도 세상 떠, 어머니 홀로 빈집을 지키고 있다. 평생을 주기만 하고 낮아질 대로 낮아진 세월이 말해주 듯 어머니의 허리는 굽을 대로 굽어 땅만 쳐다볼 정도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짊어질 짐이 없어서 홀가분할 만도 한데, 어머니는 무언지 늘 허전해 한다. 시간이 멎어버린 듯한 공허함이 견디기 어려운 모양이다.
"시간도 징하게 안가야. 말할 사람이 있었야제. 말 못하는 짐승하고나 말하까......"
해마다 찾아와 새끼들 까고 날아가는 제비집을 가리키며, "올해는 두 배 새끼나 깟어야. 지 새끼들이라고 에미가 밥 물어다 주는 것 보고 있으먼 눈물이 다 난다잉" 하신다.
"그 때는 뭐가 뭔지 몰랐니라. 그저 내 한 몸 편하자고 들먼, 새끼들 다 굶겨 죽일 것 같고, 논밭 곡식 못해 묵으먼, 꼭 무슨 벌이라도 받을 것 같고, 그랬니라."
그래서 어머니는 핏덩이 같은 어린 동생 낳고 사흘도 못돼서 소매동이(*)를 머리에 이고 밭으로 가셨을까.
"그 때는 울 시간도 없었어야. 그란디 요새는 무담씨 눈물이 나와 쌓는다." 자꾸 회한이 어리는 모양이다.
요즈음 어머니는 부쩍 입맛이 없어 하신다. 그래서 덜컥 겁이 난다. 누에는 고치를 지으려고 섶에 오르면 더 이상 뽕잎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핏기라고는 하나 없는 희멀건 어머니의 얼굴에 '저승꽃'이 피었다. 세상에, 그것도 꽃이라고 그렇게 이름 붙인 이의 갸륵한 마음이 새삼 눈물겹다. 저녁노을이 못 견디게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곧 깜깜한 밤을 예비하는 의식(儀式)이기 때문이리라. 언젠가 그 황혼이 가시더라도 어머니의 쓸쓸한 영혼에 가이없는 평안이 긷들기를 기원해 본다.
(*) 소매동이: 밭에 거름으로 뿌리기 위해 오줌을 받아두는 옹기.
|
다음글 : 
이전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