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19대유행의 파동이 파도처럼 1차, 2차, 그리고 또 3차로 밀려오자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 하거나 우울감에 빠져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일상의 삶의 순간 순간은 헌신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기계적으로, 파상적으로 일상을 대해서는 안 된다. 병이 나면 약을 먹어야 병이 낫지, 약 이름을 계속 외운다고 병이 나을 수는 없는 이치와 같다. 불교 신자들인 보살이나 처사들의 염불하는 습관도 똑같다.
태어나고 죽는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옴 마니 반메훔' '관세음보살' '나무아마타불' 같은 염송을 아무리 많이 반복해서 외운다고 삶과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다. 진언을 외우며 방황하지 말고, 스스로 그런 존재로 머물 수 있어야 한다.
태어나고 죽은 운명은 "내가 부처다"고 아무리 외어봐야 끝나지 않는다. 내가 부처라는 마음으로 머물 수 있어야 비로소 끝이 날 수 있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진언을 스승으로부터 받아 지니고 수행해야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똑같은 명령이라도 지휘관이 내리면 당장 실시되지만, 병사가 내린 명령은 효력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항상 언제 어디서나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제대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세상의 모든 바램도 이와 같다.
'나'라는 내면의 의식이 가장 중요하다.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는 존재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의식적으로 '나'를 마음에 품고 애써 주의를 기울여 다른 잡생각을 몰아내야 한다.
우리 삶은 끊임없이 비판적인 자기 성찰과 자기 학습,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열린 소통을 통해 주도적으로 관계형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누구나 다양한 관계들을 더욱 풍요하고, 의미롭고,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다.
쉬지 말고 '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란 것에 대해 약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더 이상 의식적으로 애쓰지 않아도 조금씩 더 내면의 '나'를 알아차리게 된다.
이런 '나'를 알아차림이 확고해질수록 아무리 번잡한 일을 많이 하더라도 상관없이 노력하거나 애쓰지 않고도 계속해서 그 흐름 속에 머물면서 더 자연스럽게 마음과 내가 하나가 되면서 마음도 훨씬 더 쉽게 통제할 수 있게 되고, 생기도 회복된다.
모든 일상은 믿음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수행의 목적은 애쓰지 않아도 나의 내면에서 이미 '나'란 의식 활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깨닫기 위한 것이다. 소리 내어 하던 염불이 마음으로 하는 염불로 변하고, 마음 속 염불이 마침내 본성적 존재로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