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는 전문성을 나타내는 접미사인 "~꾼"과 "~쟁이"를 나누어 가진 두 전문가 집단이 산다. 그 하나는 정치꾼이고 다른 하나는 증권쟁이다. 그들은 여의도 공원을 경계로 서쪽과 동쪽을 나누어 각각의 "나와바리"로 삼고 활동한다. 그래서 여의도를 정치 1번지라기도 하고 한국의 월 스트리트라고도 한다.
사전적 의미로 원래 꾼이란 낚시꾼, 익살꾼, 살림꾼, 씨름꾼처럼 어떤 일을 능숙하게 잘하거나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말인데 정치꾼 중에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자학하는 사람은 흔하지만 진정으로 정치를 즐기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하다. 하기야 무슨 일이든지 그것을 즐기는 경지에 오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꾼은 또 노름꾼, 술꾼, 난봉꾼, 도굴꾼,주정꾼처럼 부정적인 뜻을 갖거나 그 행위로 말미암아 부정적인 의미의 명사에 붙어 그런일이나 그와 관련된 행동을 습관적으로 자주 하는 사람을 가벼이 여겨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비린내 맡은 강아지 매맞아 허리가 부러져도 뜨물통 앞에 가서 죽는다'는 속담처럼 정치와 권력은 그 어느 마약보다 중독성과 환각성이 강하다. 특히 부패한 권력일수록 그 냄새는 영혼으로 삼투하여 많은 정치꾼들을 권력을 향한 몽유병자처럼 흐느적거리게 만든다. 여의도에서 습관적으로 정치를 하는 많은 정치꾼들은 대부분 심각한 권력 중독상태에 있다고 보면 대충 맞다. 자의든 타의든 정치를 하지 못하게 되어 여의도를 떠나게 되면 금단현상으로 낙백(落魄)하거나 영락(零落)하여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꾼이란 나무꾼, 짐꾼, 장사꾼, 싸움꾼, 사기꾼, 사냥꾼과 같이 주로 몸으로 직접 하는 일을 벌이 수단으로 하거나 주된 일로 삼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한데 이 정의가 정치꾼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는 것이 다수설이다. 정치를 하다보면 종종 몸으로 때우거나 해결해야 할 때가 많다. 이 경우 자신을 방어 할 수 있는 호신술은 기본이고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몸싸움 기술 몇가지는 필수적으로 익혀야 한다. 그래야 전문 정치꾼 대접을 받는다. 특히 청문회에서 증인에게 불시에 명패를 던져 입신양명한 전설적인 정치꾼이 등장한 이래 이 '명패던지기'는 정치꾼들 사이에서 절대무공의 팔살기로 자리 잡았다. 많은 정치꾼들이 이를 연마하는데 시간과 정력과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다. 최근에는 명패대신 구두를 던지는 '아류'도 등장할 정도다.
정치하는 데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 정치꾼들은 수시로 장사꾼으로 변신한다. 정치를 할 수 있는 '자리'를 사고 파는 '공천장사'가 전문이긴 하지만 수시로 이권, 청탁을 알선 중개해주고 돈을 뜯는 사기꾼역활도 서슴치 않는다. 정치꾼의 상술은 얼마나 악랄하고 가혹한지 진짜 장사꾼으로 평생을 보낸 거상들도 진저리를 칠 정도다. 이렇게 뜯고 저렇게 갈취한 돈으로 정치꾼들은 '표사냥''에 나서는데 그 수법과 기술은 간교하고 잔혹하기 그지 없다.
남몰래 부정적인 일을 하는 사람임을 비아냥거리는데도 꾼이란 말을 붙이는데 염탐꾼, 도망꾼, 정보꾼등이 그러한 예다. 능력있는 정치꾼으로 대접받고 생존하려면 염탐과, 도망과 정보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꾼이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의 무리임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정치꾼은 반드시 '정치적 이념'이란걸 만들고 그것으로 뭉쳐 무리를 지어 다닌다. 간혹 소신을 내세워 혼자 하기도 하는데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정치꾼들에게 제일 무서운게 왕따이고 왕따를 당하면 여의도에서 떠나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꾼들이 모이고 흩어짐을 밥먹듯 하는데 있다. 난치병의 일종인데 이 병은 5년마다 겨울에 특히 크게 도진다. 그리하여 여의도에는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기도 하고 엄동설한에 '사꾸라', '겹사꾸라' 혹은 '왕사꾸라'가 만개하여 '겨울속의 상춘(賞春)'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기도 한다. 언젠가는 훤한 대낮에 '야(夜)사꾸라"가 피어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 적도 있다.
한편으로 꾼은 '구경꾼, 일꾼 장꾼따위와 같이 어떤 일 때문에 모인 사람'이라는 뜻을 더하기도 한다. 매4년마다 장이 서는 '선거시장' 에 정치꾼들은 구름처럼 모여드는데 진정한 일꾼은 정말 드물고 귀하다. 기껏 일꾼으로 뽑아놓으면 정작 중요한 '나랏일'은 뒷짐을 쥔 채 강 건너 불구경하듯하고 패를 갈라 매사에 서푼어치도 안 되는 자존심을 걸고 힐항(詰抗)힐거(詰拒)하기를 밥먹듯하거나 상대편을 흠집내어 죽이기에만 몰두한다.
이에 비해 "쟁이"는 어떤 명사에 붙어, 그 속성을 많이 가지거나, 그 명사가 나타내는 사물을 착용하고 있거나, 또는 그 일을 행동으로 곧잘 하거나 나타내는 사람을 얕잡아 부를 때 사용된다. 겁쟁이, 욕쟁이, 안경쟁이, 거짓말쟁이, 고집쟁이, 무식쟁이, 아편쟁이 등이 그 예다.
실제로 증권쟁이 중에는 폭락할 때 공포에 떠는 겁쟁이도 많고 단말기를 통해 시세를 쫓느라 시력을 상하여 안경쟁이도 꽤 있으며 시장에게 괜히 욕을 해대는 욕쟁이도 더러 있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는 없다. 귀신도 모르는게 시세라 사람을 속이는 것은 증권쟁이가 아니고 시세이기 때문이다. 한번 사면 팔 줄 모르는 고집쟁이도 있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묻지마투자"만 하는 무식쟁이도 많다. 아편쟁이는 없지만 주식중독증은 권력중독증 못지않게 무섭다.
가끔 선량한 개인투자자들의 등을 쳐서 간을 빼먹는 간교한 수법으로 정치꾼을 흉내내는 자들도 있지만 이들은 '작전꾼'이라하여 증권쟁이에 끼워주지않는다.
정치꾼과 증권쟁이는 여러가지 면에서 서로 닮았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눈치보기에 능하고 대의 명분보다는 간판과 실리를 중히 여겨 철새처럼 자주 옮겨 다닌다. 쉽게 흥분하여 장미빛 환상에 젖기도 하고 그보다 더 쉽게 절망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여의도에는 영일(寧日)이 없다.동쪽은 동쪽대로 서쪽은 서쪽대로 늘 어수선하고 소란하며 때로 살기가 넘친다. 정치꾼들은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당리당략에만 매달려 연일 피를 튀겨가며 끝을 알 수 없는 소모적인 싸움만 하고 있고 증권쟁이는 첨예한 이해득실을 재며 무상한 시세를 쫓아 어지러운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세상은 어지럽고 시절은 수상하며 사람들의 삶은 계통없이 지리멸렬하고 있다.
건강한 전문성으로 무장한 진정한 정치꾼과 증권쟁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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