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안좋을수록, 즉 불황일수록 잘되는 산업이 있다. 바로 복권과 경마, 카지노등과 같은 사행산업이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투자보다는 투기가, 대의 명분보다는 생존이 승하고 급한 불황일수록 사람들은 노동의 의욕을 잃고 한탕주의에 빠져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차근차근 땀흘려 일하고 저축해서 부를 축적하는 일이 아득하면서 무망하게 느껴져 그저 '일발필살'로 '대박'과 '인생역전'을 아우를 수 있는 복권이나 도박에 일생의 명운과 희망을 걸고 덤벼드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얼마나 불황이 심각한지 이런 사행산업도 매출액이 예년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주식시장도 특별한 이슈나 테마가 없이 혼조를 보일 때면 곧잘 강원랜드처럼 이른바 사행산업에 속한 주식들은 연일 폭등세를 이어가곤 한다. 강원랜드야 이미 여러 번 코스닥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켜 새로울 것이 없었는데 2002년 12월 2일 처음 등장한 온라인 복권인 '로또관련주' 열풍은 국내외 악재로 수급이 꼬이고 재료는 빈곤한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군 바 있었다. .
복권사업자인 '온라인복권사업연합(KLS)'의 지분을 가지고 있거나 복권 단말기와 용지공급을 독점하기로 한 회사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세인의 가슴을 모두 복권 사고 당첨 기다리는 사람들 못지않게 설레게 했던 것이다. .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2002년 경마·경륜·카지노 등 사행산업의 전체 시장규모는 11조원으로, 지난 2000년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대표적인 경기역행(counter-cyclical)산업이라 할 수 있는 복권산업의 성장은 가히 경이적이다. 1969년 주택복권이 처음 발행된 이후 현재 20여종의 복권이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는 복권시장의 규모는 외환 위기가 진행중이던 98년 3천3백억원에서 2001년엔 7천34억원, 2002년에는 9천억원대로 눈덩이처럼 커져 왔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역전시킬 수 있는 대박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복권을 사는 자세는 진지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하다. 합리적 우연이라는 확률보다는 요행과 재수를 더 믿기 때문에 꿈에 매달린다. 프로이드의 난해한 '꿈의 해석'을 읽는가 하면 두꺼운 해몽서를 독파하기도 한다. 재수있는 꿈을 꾸기 위하여 머리속에 돼지를 몰아넣고 대낮부터 억지로 잠을 청한다. 당첨확률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에 동아리를 엮어 계를 만들기도 하고 행운의 숫자 6개를 잘 고르기 위해 관련 소프트웨어와 서적을 사는데도 돈을 아끼지 않으며 당첨이 잘 된다는 복권명당을 찾아 발품을 파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쯤되면 이건 투기가 아니라 투자다.
증권투자자에게 복권은 전혀 낯설지 않다. 복권 한장값과 같은 1000원에 외가격옵션을 잔뜩 사놓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세월을 보낸다든지, 재수보기하듯 선물에 베팅을 한다든지 또는 기업내용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저 달콤한 루머에만 의존해 몰빵을 질러놓고 주가가 오르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일상에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복권은 투자를 하고 주식은 투기를 하는 셈이다.
불경기일수록 복권이 많이 팔리니 당시 주식시장에서는 돈이 자꾸 빠져나가고 복권시장에는 돈이 넘쳤다. 복권은 나중에 휴지조각이 될지라도 우선은 꿈과 희망을 주는데 주식은 사는 순간부터 불안과 초조를 동반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하기 때문이겠지만 빚내어 흥청거리며 일확천금만 노리는 조급증 걸린 세태와도 무관하지만은 않은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목을 매는 복권은 불황속에 피는 허무의 꽃이라 할 만하다. 그 자태와 향기는 고혹적이지만 아무 것도 맺지 못한다. 꿈을 팔아 더 큰 꿈을 이루려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다급한 욕망을 해결하고 맺지 못할 사랑을 떠올리며 자위행위를 하고 난 뒤 맛보는 것과 같은 끝없는 허무와 씁쓸한 자괴감, 그리고 아랫도리 기운이 모두 빠지는 듯한 허탈감 뿐이다
지하철정거장에 있는 복권판매대를 지나는데 씁쓸함과 처연함이 갑자기 시심(詩心)을 자극한다.
절실한 것이 우선
삶이었으므로
자유를 팔아
순도 99%짜리 허무와 바꿨다.
바꿔주기에 맞춤한
상자안에 갇혀
전동차의 굉음속으로
사라지는 금속성 불빛같은
시간들을 세고 있노라면
꿈을 팔아
가난한 자는 단 한 장의
희망과 바꾸고
조금 가진자는 서너장의
소망과 바꾸며
많이 가진자는 수백장의
욕망과 바꾼다.
때로는
삶보다 더 치열한 바람(望)이
풍화(風化)되면서
남긴 부스러기와 바꾼
차가운 캔맥주로 더위와
흥정도 해 본다.
그러나
그것들은 곧
되돌아 올 것이다.
희망은 절망으로
소망은 낙망으로
욕망은 실망으로 변하여
처진 어깨에 구겨진
얼굴을 얹고
돌아 올 것이다.
삶이란 이토록 서로
바꾸는 것이다.
희망과 소망과 욕망을
절망과 낙망과 실망으로 바꾸듯
불같이 뜨겁고 절실한 염원과
얼음처럼 차갑고 확률같이 냉정한
캔맥주를 서로 바꾸는 것이다.
구겨진채 구르는 캔 속에는
미처 바꾸지 못한 더위가
완전히 비우지 못해
더욱 아쉬운
바람(望)과 섞여
출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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