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매는 할매되고 / 허홍구
염매시장 단골술집에서
입담 좋은 선배와 술을 마실 때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 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지고
이것저것 다 시키다보면 돈 떨어질 테고
그래서 얼굴이 곰보인 주모에게 선배가 수작을 부린다
"아지매, 아지매 서비스 안주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주모가 뭐 그냥 주모가 되었겠는가
묵 한 사발하고 김치 깍두기를 놓으면서 하는 말
"안주 안주고 잡아먹히는 게 더 낫지만
나 같은 사람을 잡아 먹을라카는 그게 고마워서
오늘 술값은 안 받아도 좋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십수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아줌마 집은 할매집으로 바뀌었고
우린 그때의 농담을 다시 늘어놓았다
아지매는 할매되어 안타깝다는 듯이
"지랄한다 묵을라면 진작 묵지"
(*) 염매시장은 대구역 근처에 있는 도매시장 이다.
무엇이든지 싸게 판다고 해서 염매시장(廉賣 市場)이다.
대학시절 방학을 맞아 대구에 내려가면 옛 친구들과 자주 들러 술추렴하던 곳이기도 하다.
한 때는 미군부대 PX에서 흘러 나온 면세맥주를 야매로 싸게 파는 맥주집이 있었다. 막걸리가 주식이고 소주가 간식이었던 대학시절에 맥주는 귀하고 비싼 '특식'이던 때라
밀러니 뭐니 하며 영어상표가 박힌 온갖 양맥주를 배가 터지도록 마신 추억이 있다.
기억하기에 그 양맥주에서는 쇠비린내가 났다.
U.S Steel과 강철왕 카네기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완강하고도 씁슬한 맛이 미각돌기를 기습하곤 했다.
오뎅을 먹은 뒤 꼬치를 세어 계산하듯이 발로 밟아 우그러뜨린 깡통의 숫자를 세어 술값을 치렀다. 맥주를 한깡통 비울 때마다 발로 깡통을 밟아 우그르뜨리면서 암울한 시대 억눌린 청춘을 발산하기도 했다. 안주는 멸치, 땅콩, 콩 볶은 것, 김,등 마른안주 일색이었는데 맥주를 마시면 공짜로 줬다. 맥주깡통을 쥐고 있는동안은 무제한 리필이 되어 가난한 대학생들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주곤 했다.
물론 막걸리 집도 즐비했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쌍과부집도 물론 있었다. 반쯤 욕을 섞어가며 거친 경상도 사투리로 우리를 대하던 그 많은 아지매들은 이제 모두 할매가 되었거나 세상을 달리했을 것이다.
기회가 되면 염매시장에 꼭 한번 들릴 작정이다. 술도 사람도 옛 것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혹 모를일이다.
잃어버린 내 청춘과 기억의 보석상자를 여는 열쇠를 줏어 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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