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어도 돌아가지 않으리 ...
청운의 꿈을 품은 채 미완의 시간들을 치열하게 살았던 그 옛날 광화문 재수시절, 열아홉 경상도 머슴애는 늘 비장하였다. 당시에는 출처가 불분명했던 옛 한시 하나를 가슴에 새기며 다니다 못해 책이라는 책의 맨 앞장과 책상머리에 아로새겨놓기도 하며 전의를 불태우곤 했다.
男兒立志出鄕關
남아가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나가니
學若無成死不還
학문을 이루지 못하면 죽어 돌아가지 않으리
埋骨豈唯墳墓前
뼈를 묻는 것을 어찌 오직 조상 무덤 앞에서만 하리
人間到處有靑山
사람 이른 곳마다 묻힐 청산이 있음이니
어느 날 서가를 정리하다가 옛날 재수시절에 쓰던 하 희주 선생의 ‘고문연구’라는 책을 발견하였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책이라 책갈피 곳곳에 곰팡이가 슬어 있었고 그 위에 먼지가 켜켜이 올라 앉아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첫 장을 펼치니 예의 그 한시가 아직도 비장한 자세로 웅크리고 있다가 눈에 박히며 아는 체를 한다. 설핏 눈물이 났다
그 시는 알고 보니 일본의 釋 月性(1816~1853)이라는 진종(眞宗)의 승려가 젊어서 오오사카로 공부하러 떠나면서 쓴 ‘將東遊題壁 (동쪽으로 떠나며 벽에 쓰다) ‘였다.
그로부터 세월은 흐르고 흘러, 쏜 살같이 흐르는 물처럼 쉬지 않고 흘러 열 아홉 홍안의 그 머슴애는 이제 귀밑머리 희끗한 채 지천명의 세월을 힘들게 더듬고 있고 그 비장한 각오와 결의 치열했던 시간들은 꿈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또 그림자처럼 흩어져 가 버렸다.
흘러 간 청춘의 시간들은 언제 돌아보아도 아름답다. 그러나 중년의 하오를 지나며 그 시절을 회억하는 시간은 늘 아득하고 또 슬프다.
참! 슬프고 아름답고, 혹은 아름답고도 슬픈 야그가 아닐 수 없다.
무모하리만치 순수하고 대책없이 치열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갈수 만 있다면, 늘...
Any Time, Any Way, Any Where, Any 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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