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제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우리의 광장에서가 아니라 풀뿌리 마라토너들이 가장 많이 접속하는 마라톤 온라인에서 일파 만파로 증폭되어 불붙고 있습니다.
사인의 본질에서 한참을 벗어난 주변의 잡다한 문제로 무조건적인 오해와 왜곡, 맹목적인 비난과 음해의 불이 번지고 있는 것입니다.
'순수와 봉사'라는 슬로건 아래 광화문 모임이 태동한 이래, 페이싱봉사 전문모임으로 위상과 역할을 정립한 이래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고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듯 합니다.
모임이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마땅히 따라야 할 질적 성숙과 엄격한 도덕적 기준의 확립에 우리 모두가 요란하게 구호만 웨쳤지 사려깊은 주의를 덜 기울이고 실질적인 노력을 아낀 탓은 아닌가 제 자신부터 반성해 봅니다.
어떤 조직이든 대외적인 위상을 정립하고 주도적인 활동을 하기위해서 반드시 확보해야 할 것은 바로 '신뢰와 도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은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구축하고 축적하는데 많은 노력과 오랜 시간이 요구되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며 한번 훼손되면 회복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양적 팽창에서 오는 포만감에 취하고 대외적 인식과 찬사에 까닭없이 우쭐했으며 지나친 자부심의 그늘에 안주하여 스스로를 살피고 경계하는 일에 소홀한 적은 없었는지 조용히 돌이켜 볼 일입니다.
성장배경과 개성이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어떤 일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 그리고 관용의 정신이라고 배웠습니다. 상식적으로 옳고 당연한 일을 하는데도 다른 시각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비판과 오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속된 말로 '딴지를 거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일방적으로 상대를 매도하고 같잖게 여겨버리면 결국은 분쟁으로 비화될 수 밖에 없겠지요. '마라톤'이라는 공통적인 코드 하나만을 매개로 해결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자신의 잘못은 없는지 되돌아 보고 관용을 베푸는 일일 것입니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라!'했습니다. 뗏목은 그야말로 강을 건너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 가르침은 참으로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뗏목을 마련하는 데 많은 비용과 노력을 지불했기에 강을 건너서 뗏목의 효용이 사라졌다해도 애착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강을 건너고 난 뒤 강가에 뗏목을 묶어 놓고 길을 가면 길을 가기도 편하고 그 뗏목은 다음에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아주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강을 건너고도 소용없이 무겁기만 한 뗏목을 끌고 산길을 힘들게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과거가 미래를 완벽하게 담보하고 보장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과거가 아무리 훌륭했더라도 현재와 미래는 언제나 낯설고 힘들며 두려운 시간의 연속입니다.
지금은 머리와 입으로 사는 시대가 아닌 듯 합니다.
다가오는 낯선 시간들을 뜨거운 가슴으로 힘껏 밀며 살아내어야 할 시절인 것 같습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옛말을 저는 믿습니다. 황혼을 거친 어둠을 지나야 새날의 여명이 시작되듯이 혼돈도 질서를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일 것입니다.
이번 사태가 우리 광화문 모임 가족들의 결속을 다지고 내실을 기하는 아프고 쓰라리지만 발전적인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궂은 날씨에 독거노인돕기 대장정에 나선 여러분들의 무사완주를 빌고 또 빕니다.
청계사 요사채 툇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지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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