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프간 의족소녀 카림 "차별을 넘어…" | 화상으로 두 무릎 모두 잘라내
19남매 중 막내… 혼자 글익혀
[조선일보 성진혁 기자]
아래위 검정색 운동복에 모자를 뒤로 눌러쓴 소녀가 트랙을 달렸다. 평범한 운동화가 스파이크를 대신했다. 100m 기록은 18초85, 꼴등이었다. 다른 ‘언니 선수들’보다 4~6초쯤 뒤졌다. 하지만 마리나 카림(14)의 작은 발걸음은 조국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그중에서도 장애인 여성의 인권을 위한 큰 도약의 발판이었다.
카림은 이번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한 아프가니스탄의 첫 여성선수 두 명 중 하나. 선수단 9명(선수 4명·임원 5명) 중 가장 어리다. 어렸을 때 양 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어 양쪽 무릎 아래를 잘라야 했다. 21일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100m 예선엔 의족을 하고 같은 등급의 장애를 가진 선수들과 경쟁했다. 패럴림픽의 경기 수준도 아주 높기 때문에 아직 역부족이었다.
각국 언론의 취재공세를 받은 카림은 한동안 실망의 눈물을 흘리더니 곧 의젓하게 “이곳에 여성으로 참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조국을 위해 뛸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이 장애인들에게 좋은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카림이 아테네에 오기까지의 과정은 드라마 같았다. 부모, 10남9녀라는 대가족의 일원인 카림은 탈레반 정권과 반군의 내전 속에서 떨며 살다 총탄을 피해 수도 카불로 이사했다. 카불 역시 내전의 상처로 반 이상 파괴돼 카림네는 새 거처의 지붕을 고쳐야 했을 정도였다.
카림은 탈레반 치하에서 공립학교에도 가지 못하는 여성차별의 희생자였지만 글자를 익히고 집에서 꾸준히 공부했다. 이슬람 독재정권이 무너져 여성에게도 학교의 문이 열리자 카림은 테스트를 받고 4학년에 입학했다. 그러던 중 새로 생긴 장애인올림픽위원회에서 패럴림픽에 출전할 선수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5월 선발전에 나섰다. 평소에도 의족을 하고 구김살 없이 많은 친구들과 뛰어놀던 카림은 117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육상 대표가 됐다.
두 달간의 훈련 과정은 열악했다. 트랙이 깔린 곳은 가지 스타디움뿐이었는데, 한 휠체어 선수는 축구경기가 열리던 그라운드에서 날아온 공이 바퀴에 끼는 바람에 넘어지기도 했다. 다행히 노르웨이 정부가 후원에 나서 모든 경비를 대 줬고, 2주간 전지훈련까지 오도록 배려했다. 카림은 오슬로에서 아프가니스탄 텔레비전, 라디오와 인터뷰를 하며 국가적인 관심을 모았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장애인 스포츠의 상징이 된 카림은 “커서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다. 좋은 육상 선수도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테네=성진혁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jhs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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