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 : 2004. 10. 4. 은정이의 가을맞이
통증치료를 위해 병원에도 다녀왔고
은행 통장을 해지하려면 반드시 본인이 가야한다기에
오늘은 언니와 함께 은행을 다녀왔다.
더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내 스스로 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날을 잡아 다녀온 것이다.
언니는 내 휠체어를 미는데
많이 익숙해져 있었지만
도로는 휠체어가 다니기엔 너무나도 불편했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을 지날때마다 전해져오는 충격은
통증을 더하게 만들어
"으악! 으악!" 비명소리를 노래처럼 부르며 다녔다.
다행스럽게도 집 근처에 은행들이 있어 그나마 순조롭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각 방송사마다 출연료가 입금되는 은행이 달라서
여러 개의 통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주 거래은행 한군데만 빼고
나머지 통장은 모두 없애버렸다.
그렇게 또 한가지 일을 정리하며 가을을 맞는다.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어서는
장애인 주차증을 만들어야 했다.
"보행 불가능한 환자" 라는 진단서 말이다.
방송국 현관과 가까운 주차장소를 골라놓고
"여긴 내 자리 하면 안될까? 장애인 주차공간으로 말야"
하고 내가 말했더니
노래추억 방송팀 작가 꽃사슴양이 이렇게 말했다.
"언니, 거긴 장애인 주차공간이 아니구요. 그냥 언니 자리예요" 라고....
나는 내가 일하고 있는 원음방송국이 너무나 좋다.
피튀기는 경쟁대신 상생하는 화목이 있고
배려와 사랑이 넘치는 곳이라
직원들 모두가 가족같이 느껴진다.
특히 노래추억 방송팀은 두 말할 것도 없지.....
............
이제는 내가 탈 수 없는
인라인 스케이트, 스키 등, 운동기구들은 조카에게 넘겨졌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며
가을맞이를 하고있다.
가지고 있는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왜 이리 정리할 것은 많은지.
가을을 맞으며 더욱 바빠질 것 같다.
2.
그녀는 이렇게 가을보다 떠 빨리 말라 가고 있다.
길은정이란 예명으로 연예계를 데뷔한 후
40중반(?)의 지금까지 청순한 이미지로
낯 익었던 그녀가 7년 전 직장암 선고 후
장루환자(인공항문 시술자)로 몸 바꿔
그런대로 아름답게 새 삶을 살아오더니
6개월 전, 또 다시 골반으로 침투한 뼈 암과
생존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엊그제 9월30일 밤 12시,
'병원24시'라는 프로에 그녀의 생생한
모습이 나왔다.
이미 골반뼈의 반 이상이 암세포에 침식당한
상태, 정형외과 주치의가 골반을 도려내는 수술을
권유하자 그게 무슨 소용 있겠냐고
이미 온 몸으로 퍼져 있을 새끼의 암 세포들을
그냥 놔 두고 골반만 도려 낸들...
한계의 현대의학,
눈물만 흘렀다.
3.
본인도 인정하고 있었다.
길어야 6개월, 짧으면 3개월이라고
그러기에 지금 이 가을에
하나 하나 주변정리를 한다고
2년 전쯤, 同病相憐이었던가
그녀의 홈피에 적힌 일기를 읽고 난 후
무척이나 건강하길 빌었는데
너무도 바삐 달려가는 그녀가 밉다.
기적 하나, 하느님께 빌어 본다.
누군들 피해 갈 수 없는 길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하필 이 가을에
떠나려는 그녀가 무척이나 밉다.
4.
7년 전 이별했던 암은
저리 늦게도
또 찾아 오는 것인가.
출근하라고 밥 짓는 아낙의 모습이 야위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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