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가죽구두 / 손택수
세상은 그에게 가죽구두 한 켤레를 선물했네
맨발로 세상을 떠돌아다닌 그에게
검은 가죽구두 한 켤레를 선물했네
부산역 광장 앞
낮술에 취해
술병처럼 쓰러져
잠이 든 사내
맨발이 캉가루 구두약을 칠한 듯 반들거리고 있네
세상의 온갖 흙먼지와 기름때를 입혀 광을 내고 있네
벗겨지지 않는 구두,
그 누구도
벗겨 갈 수 없는
맞춤 구두 한 켤레
죽음만이 벗겨줄 수 있네
죽음까지 껴 신고 가야 한다네
- 2004년 현대시 1월호 중에서
(*) 역마다 '세상의 온갖 흙먼지와 기름때를 입혀 광을 낸'
살가죽구두를 신고 '술병처럼 쓰러져' 잠이 든 사내는 더이 상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대공원 삼림욕장에 '맨발로 걷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걷는 맨발들은 모두 하얀 살가죽 구두를 신고 있더군요.
그래도 우리는 쿠션좋은 운동화를 신고 마음껏 달릴 수 있으니 참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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