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삼촌이 무서워 한 사람
홍사중의 문화마당 (1990년대 말에 나온 신문같다) 조선일보 23552호.
'우리 이씨네 사람들은 모두 술에 약하다. 조금만 마셔도 홍당무가
된다. 아버지의 막내동생인 철이 삼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스카치 두어잔만 들고 나면 입이 거칠어지고 농을 잘 했다.
그러나 삼촌은 부엌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모습을 보이기가
무섭게 말소리를 낮추고 화제를 바꾸기도 했다.'
지난 5월 12일자 뉴옥 타임즈 일요일판에 실린 <리 창래>
라는 한국인 작가의 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느날 밤 단둘이
타고 가는 자동차 속에서 철이 삼촌은 그에게 이것 저것 물었다.
화제는 어느덧 가족얘기로 돌아갔다. 그가 어머니에 대해 평소에
품었던 불만을 털어 놓으면서 못마땅해 하자 작은 아버지는
뜻밖에도 '이 세상에 네 엄마만큼 훌륭한 분이 또 어디 있느냐' 고
나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절대로 남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말라. 언제나 먼 앞날을 내다보고 매일매일
열심히 일해라' 라고 가르쳐온 어머니의 눈으로 볼 때
일정한 직업도 없이 늘 빈둥거리면서 큰 소리만 하는 작은
아버지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건달이나 다름이 없었다.
작은 아버지도 형수가 자기를 멸시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형수를 작은 아버지가 우러러 보고 있다는 것은
어린 그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지 두어주일 후에 작은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에게
사업자금으로 1만 달라를 돌려달라고 손을 벌려 왔다.
어머니 생각에 그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다니던 대학도
끝마치지 못하고, 태권도장과 당구장에서 빈둥빈둥 허송세월이나
하면서 허황되게 일확천금만 꿈꿔온 작은 도련님을 어떻게 믿고
돈을 주느냐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심한 말다툼이 이어진 끝에
아버지가 모든 책임을 지기로 했다. 이리하여 작은 아버지는
브롱스의 빈민가에 코딱지만한 잡화점을 차리게 되었다.
작은 아버지의 장사는 예상 이상으로 잘 되었다. 한참 후에 우리
집에 나타난 작은 아버지 내외는 온통 고급품으로 몸을 감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돈을 벌었다고 쓸데없이 낭비한다>고 질책할
어머니의 눈총을 의식해서인지 몹시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었다.
작은 아버지는 몇년이 못되어 50명 이상의 종업원을 거느리는
대 실업가가 되었다.
'몇년인가 흐르고 나의 어머니가 죽음의 병을 앓게 되자
작은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푸짐한 선물을 들고 우리 집을
드나들었다. 내게는 늘 현금을 주었다.
그는 내가 작가가 되기 위해 직장을 집어치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작가란 가난뱅이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한심스러운 직업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를 볼 때마다 어머니 몰래
넌지시 몇 백달라씩 건네 주곤 했다.
그렇게 기세가 당당하다가도 어머니만 보이면 당장에 풀이 죽는
것이었다.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어머니 눈에는 자기가 여전히
얼빠진 방탕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머니의 장례식 날 누구보다도 침통해 한 것은 작은 아버지였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계속 지하에서 못마땅한 눈으로
감시하고 계실 거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장지에서 돌아오자 어머니의 친구들은 제각기 가지고 온 음식들을
차리고 있었으며, 남자들은 거실에 모여 앉아서 조용히 얘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머니는 2년 가까이나 병석에 누워
있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병 간호에 지쳐 있었던 만큼
은근히 마음이 풀어진 것 같았다.
그런 속에서 마치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가구위의 먼지가 날릴까
걱정이라도 하는 듯이 발소리를 죽여가며 집안을 서성거리던
작은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는 또 실없이 혼자 끄덕거리기도 하고 연신 사람들에게 절도 하고,
음식접시를 나르는 부인들은 돕기도 했다.... '
'한국의 풍습으로는 문상객들은 모두 조의금을 내게 되어있다.
그것은 인사치레 정도인게 보통인데 작은 아버지가 내 놓은 봉투는
몇 천 달라나 되는 두툼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요새는 장사가 시원치 않아서 더 하지 못한다>고
몹시 미안스러워 했다.
나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에 더 많은 조의금을 낸다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틀림없이
<제버릇 개 못준다>며 혀를 찰까 두려웠던 게 틀림이 없었다.'
이처럼 예전에는 자기가 믿는 가치관을 끝까지 지키고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고, 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엄한 어른이 있었고, 그런 가정이 많았다.
그런 어른들은 또 아무도 감히 뒷손가락질 할 수 없을 만큼
떳떳했기 때문에 권위가 있었다.
또 작은 아버지가 형수님을 어려워한 것은 형수의 가치관이 옳은
줄 알고 있으면서도 그대로 따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뉘우침 때문이었다.
요새는 그런 어른을 찾기가 어렵다. 집안에만 없는 게 아니다.
나라안에도,아무리 눈를 크게 뜨고 위를 올려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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