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에서 / 정병선
청동미륵반가사유상이
끙하고 힘을 주자
황금색 아기부처가
맑은 석간수 속으로 잠긴다
불립문자라
바람에구름처럼
흩어지는 화두를
끌어 안고
살육의 들을 지나
환락의 언덕을 넘어
구토와 두통으로
늘 지리멸렬했던
아침들이
빛깔 곱게 적멸한다
일주문 밖 부도밭에
바람이 일고
산죽 수런거리는 소리에
새들이 날아 오르면
살기섞인 의심의
시간들이 부질없는
내 몸을 해탈하여
열반가는 길을 떠난다.
대웅전 앞마당
베롱나무에 매달린
매미가 필사적으로
늦여름을 울고
구름 비낀
석조삼층탑에
세월처럼 더깨 앉은
이끼가 파르르 떤다.
(*) 지난 여름 해남 대흥사에서 보낸 5박6일 그 마지막날 아침 나는 마침내 해우소에서 성불했다. 부질없는 세상의 온갖 근심과 걱정이 5박6일간의 정진만으로도 그리도 아름답게 해탈할 수 있음을 몸으로 느끼고 보았을 때 나는 감격의 눈물을 아니 흘릴 수 없었다. 아! 이 보잘것 없는 사악에 익숙한 인간도 저리 아름다운 배설을 할 수 있구나! 나는 한참을 울었다. 오랫동안 미뤄두기만 했던 어려운 숙제를 다 해치운듯한 기쁨에 떨며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나는 나의 배설을, 황금색 아기부처를 닮은 나의 적멸을, 고운 향내조차 나는듯한 나의 거룩한 분신을 만지고 싶었다. 고운 종이에 싸서 갖고 오고 싶었다. 동네방네 다니며 자랑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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