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해 여름은 무더웠다.
길 잃은 개들의 혀는 땅에 끌리고
높은 언덕을 오르던 차들은 반숙처럼 익어갔다.
초행의 병원 길은 멀고, 긴장에서 오는 떨림에
땀은 비 오듯 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했을까.
꼭 잡은 두 손 사이에서 무수한 말들이 오갔다.
“여보, 힘내!”
“알았어요. 여보, 나 안 죽어. 하느님이 계시잖아.”
이미 촉촉해진 눈빛, 마주보면 금방 쏟아질 것 같은 충혈 된 눈 사이로
더운 바람이 무심하게 지나갔다.
2.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직업의식이었을까.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애써 태연하려는
담당 의사의 얼굴에서 예민해진 내 감각은 여지없이 조직검사의
결과를 읽어 내었다.
담당 의사는 무겁게 입을 떼었다.
“혹시나 했는데……. 안타깝습니다. 수술을 해야겠습니다.”
흰 가운에 씌어진 ‘의사 김두석’이란 이름표가 파르르 떨렸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날개를 접고 회오리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갔다.
창 너머 먼데의 산들이 강풍에 사라지고 이글거리던 태양마저
얼음파편처럼 싸늘했다.
주치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볼펜으로 책상을 탁탁 두드리며
석고처럼 서 있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실핏줄이라도 터진 것일까. 붉은 눈물이 용암처럼 흘러 내렸다.
움직일 수 없는 폐허의 흉물처럼 우리는 그렇게 굳어 있었다.
“자, 힘을 내십시오. 항문피부조직에서 발생한 편평세포암으로써 다른 암보다 예후가 좋은 편입니다. 수술하고 치료를 잘 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의술이 옛날 같지 않아서 절대 절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수술 후 10년 20년을 살고 계시는 분들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감입니다. 이 병은 의사가 고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 자신이 얼마나 힘과 용기를 가지고 싸우느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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