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은 해남 들녘을 지나며
노을은
어제도 이 길을 지났으리라
보리들이 초록초록 키질하는
해남 땅 들녘을 바라본다.
서서보다 그만 노을이 자빠뜨리는 통에
한참을 앉아서 본다.
천만 다행이다.
이렇게 운이 좋은 날도 있다니
썩어 흐르던 내 몸의 피가 정화되어
붉게 물든다.
노을은 한참 머물다 간다.
동해를 떠올라 낮 동안의 고된 삭신을
준봉 허리춤에 등 기대이고는
뭘 찾을 요량인 듯 두리번거리다
요런!
누런 금이빨을 하고는
해남 땅 하나를 덥석 문다.
노을은 선홍빛 얼굴로 으르렁 거린다.
출렁이는 파도에 몸을 흔들고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검푸른
거기, 땅 끝 마을 바람을 낚아채어
미안한 듯 홍조 띤 얼굴로 간다.
노을에 타오르던 새들이 놀라
땅 끝 지붕으로 찾아드는 저녁
그 저녁 사이로 등 푸른 파도들도
빈 배의 출렁거림에 자지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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