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기습적으로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새벽에 대공원으로 나가니 아직 해가 아직 뜨지 않은 薄明의 시간이지만
쌓인 눈빛에 주변이 훤합니다. 시야가 확 트이니 눈도 마음도 시원합니다.
푸른 소나무 가지가 눈을 담뿍 이고 늘어져 있는 모습이 한가롭습니다.
제법 거세게 날리는 눈발속에서 청계산과 관악산이 희미하게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어제만 해도 산 정상의 눈도 거의 다 녹아 군데군데 殘雪이 겨울의 마지막 자취를 여미고 있었는데 밤사이에 다시 하얀 눈모자를 덮어 썼습니다.
발목까지 잠기는 눈위를 껑충껑충 노루 뜀을 해봅니다. 방한모로 가린 이마 위로 금새 땀이 솟고 두 뺨을 스치는 바람은 비록 눈을 몰고 오긴 하지만 훈훈한 기운이 감돕니다. 어김없는 봄의 훈풍입니다.
반 쯤 얼어 붙은 호수 아래로 물이 우는 소리가 쩡쩡하고 울립니다. 두꺼운 얼음 밑으로 봄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나 봅니다. 호수의 언 부분이 끝나는 지점에 청둥오리 몇 마리가 자맥질을 하고 있습니다.
청계산 만경대 너머에서 희미하게 동이 터 옵니다.
정지용 님의 시 춘설(春雪)을 읊어 봅니다. 瑞雪속에서 새로운 하루를 맞으니 오늘은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세상과 사람은 어지럽고 변덕스러우나 계절은 한 치 어김이 없습니다. 천지간에 미만(彌滿)하여 봄을 알리는 瑞雪처럼 즐겁고 행복한 일 가득하시길 빕니다. 智月 合掌
춘설(春雪)/ 정지용
문 열자 선뜻 !
먼 산이 이마에 차라.
雨水節(우수절)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숭거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워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 기던 고기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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