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상가(喪家)에 가면 근조(謹吊)라는 글씨가 쓰인 등(燈)과 화환(花環)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여기서 조(吊)는 문상하다(問喪)하다, 안부를 묻다 등의 뜻을 지닌 조(弔)의 속자(俗字)로써 그 본의(本義)는 '목을 매다 '는 뜻이다. 그 용례로 조교(吊橋)를 들 수 있는데(우리나라에서는 이 경우 '적교'라고 읽는다.) 이는 橋脚이 없이 줄로 매단 다리를 일컫는 것으로 현수교(懸垂橋, suspension bridge),사장교 [斜張橋, cable-stayed girder bridge]가 이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남해대교, 일본의 Akashi Kaikyo Bridge,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등이 대표적인 현수교로 수심이 깊거나 하부구조를 설치하기 곤란한 지형에 유리하다.
각설하고,
弔의 자원(字源)을 살펴보면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형상에서 딴 것이다. 옛날에는 부모가 죽으면 시신이 자연(自然) 탈육(脫肉: 살이 썩어 없어짐) 될 때까지 활을 들고 짐승으로부터 지켰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문상을 가는 사람들이 짐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활을 가지고 갔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어쩐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에 비해 吊의 자원은 입구(口)아래 수건 건(巾)을 한것으로 목을 매는 형상에서 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문상을 하면서 謹吊라고 함은 '삼가 목을 맨다'는 뜻이 되어 버리고 만다. 물론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 하는 뜻이 지극하면 '삼가 목을 맬'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줄초상이 나고야 말 것이다. 급기야는 순장(殉葬)이라는 옛 폐습(弊習)이 되살아 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弔와 吊를 혼용하는 것이 현 세태라 내가 입에 거품물고 앙앙불락(怏怏不樂)할 일은 아니지만 이치를 따지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대중이 무식하면 그것을 따라가야하는 것이 요즘 세상사는 이치이다)
그러나 관혼상제와 같이 엄숙한 의식과 관련하여 자신의 뜻을 나타 낼때는 반드시 정문(正文)을 취할 것이요 속자(俗字)나 비자(卑字), 또는 약자(略字)등은 피하는 것이 지식인의 올바른 어문(語文)생활태도라 할 것이다. 하기야 요즘에는 소위 식자층이라는 사람들조차 지방(紙榜)이나 비문(碑文)을 쓸때 서슴없이 약자나 속자를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이는 무식의 소치에다 의식의 결여(缺如)가 보태진 것이니 참으로 개탄(愾嘆)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날씨가 추워진 탓일까. 요즘 부쩍 부고를 접하는 경우가 잦다. 통상 병원의 후미진 곳에 마련된 장례식장에는 여전히 '謹吊'라는 검은 글씨의 표지등이 옛날 주막의 주등(酒燈)처럼 걸려있다. 상대적으로 좁은 빈소(殯所, 요즘 이것도 염할 殯 대신에 손님 賓을 그냥, 시치미 뚝떼고 의기양양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써 놓은 곳이 더러 있다. 여기서 殯所는 염을 하여 시신을 모셔둔 장소의 뜻이다.)에 비해 넓게 마련된 빈소(賓所: 손님, 즉 문상객을 맞이하는 장소)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주막을 방불한다.
사람들은 '삼가 목을 맴(謹吊)'이라고 적힌 봉투(통상 賻儀라고 적힌 봉투를 쓰는데 이경우에도 부의하는 사람 이름 아래에는 '아무개 謹弔'라고 쓰는 것이 옳다)에 각자의 형편과 분수, 망자와의 관계, 혹은 유족들과의 친소이해(親疎利害)관계에 합당한 돈을 마치 무슨 입장료처럼 넣고 망자를 모셔놓은 빈소(殯所)를 스치듯 거쳐 지나 주막같은 빈소(賓所)에 서둘러 입장하는 것이다.
주막과 같은 賓所에서 사람들은 "삼가 목을 맬" 듯이 곡진(曲盡)하고도 핍진(逼眞)했던 '죽은 자'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정염(情念)은 까맣게 잊어 핍진(乏盡)해 버린 채 술과 친구와 고스톱으로 '산 자의 시름"을 달래고 "산 자 사이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데에만 '삼가 목을 맬'듯이 몰두하는 것이다. (2002/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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