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김 재 남
KTX가 농부의 대가리를 까발린다.
논두렁마다 흥건한 거품들이 나른하게 풀어지고
길게 심장을 내어 준 산들,
나무들이 하늘로 뿌리를 박고
만장을 하나씩 나풀거린다.
그때서야 농부는 땅으로 돌아가는 소멸 의식을 치른다.
갓 태어난 아이가 수 만평의 땅 위에 누워있다.
어제 산 땅이 금잔디로 변했다고
구름위로 살찐 물고기가 파닥거리며
비행기 날개에 오른다.
대치동 타워팰리스 안에서 고기를 구워 먹던 사람들이
황금 이빨을 쑤시며 시시덕거린다.
눅눅한 내 눈에서 썩지 못한 빗물이 흘러내린다.
갈비뼈에서 더 이상 날개는 솟지 않았다.
거꾸로 가는 기차가 가끔 바람을 일으킬 뿐
침묵의 시간은 반쯤 걸린 허허벌판의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했다.
길이 길 위로 눕고 벌판의 안개가 침묵을 가두어
장례를 치를 즈음,
자신을 들여다보던 기억들이 술병처럼 쓰러진다.
바람은 이렇게 부는가.
덥수룩한 내 얼굴을 비끼어 달아나고
초췌한 그림자들은 오늘도
싸락눈 한 움큼씩 움켜쥐고는
동짓달 그믐밤을 연거푸 들락거리는데
바람은 또 그렇게 부는가.
산죽들이 피를 흘리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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