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반야심경 35-4] 내지무노사(乃至無老死) 죽고 늙는 것 또한 없다 : 공하다는 관점 또한 공하므로 생사 또한 가까울 까닭이 없다
‘무명이 있을 때 행이 있고, 행이 있을 때 식이 있고, 식이 있을 때 명색이 있고, 명색이 있을 때 육입이 있고, 육입이 있을 때 촉이 있고, 촉이 있을 때 수->애->취->유->생->노사, 즉 생이 있을 때 노사가 있다.’ 것이 바로 12연기설이다.
이를 반대로 읽어 가면, ‘무명이 다할 때 행이 다하고, 행이 다할 때 식이 다하고.....생이 다할 때 노사가 다한다.’로 끝난다. 여기서 그 둘 다 없다는 것이다. 즉 12연기설은 없다는 것이다. ‘내지‘란 말은 12연기설을 모두 언급하면 길어지니까 중간을 뺀 것이다.
죽으면 어디로 갈까? 태허, 즉 태고의 허무 속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다. 태허(太虛)는 역(易)의 '태극(太極)'과 거의 같은 말로 천지 만물의 근원을 이루는 무형(無形)의 도(道)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장자는 도(道)를 일체의 것, 전체 공간에 확산되고 명칭도 표현도 초월한 실재이므로 이를 '태허'라 불렀다. 태허는 기의 본체로 기는 태허에서 생기고 모여서 만물을 생성하며, 기가 흩어지면 함께 만물은 소멸하나 기는 흩어져 다시 태허로 돌아간다. 즉, 기가 흩어진 모습이다.
크고 작은 성상을 논리적으로 다루는 것은 공의 세계에 접근하지 못한 소리일 뿐이다. 죽음은 삶 또는 생명이라는 큰 집착에서 몸을 떼어 내는 것으로, 비로소 무명의 헛된 경계가 다하게 됨을 보게 된다. 즉 모든 집착을 싹 쓸어서 공의 세계로 갈 때 진실한 세계를 알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