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학을 공부하면서 세상에 돌아다니는 말과 글들을 새롭게 보고 해석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찌 보면 우리가 흔히, 익숙하게, 꺼리김없이, 당연하다는듯이, 정정당당하게 쓰는 말과 글들에게 공연한 시비를 거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언어란 시대의 산물이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가 별 생각없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과 글에는 우리의 의식은 물론이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시대와 사회라는 시간적, 공간적 의미가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고 살이가 빡빡하다보니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말과 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웬만한 말과 글로는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폭탄세일' '가격파괴' 같은 용어가 그런 것 들이다 (요즘은 한술 더 떠 '물가파괴'라는 말도 흔히 쓰인다.) 세상에 폭탄을 세일하는 민족은 대~한민국 국민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용산에 가면 '전쟁기념관'이 버티고 있다. 전쟁을 기념하는 나라도 아마 지구상에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폭탄세일'이 난무하고 걸핏하면 가격을 파괴하다가 그것도 모자라 아예 물가까지 파괴해 버리는 것을 보면 외국인이 우리를 '테러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치부해버릴까 봐 겁이 난다
'전쟁기념관'도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기념할 것이 많고도 많은 세상이건만 하필이면 '전쟁'을 기념하지 못해 '전쟁기념관'까지 지어 놓고 기념하려 안달을 하는가? 우리 민족이 그렇게 호전적인 민족이었던가!
가관인 것은 전쟁기념관에서 거의 매일 인생의 새출발을 다짐하는 결혼식이 성대히 거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쟁기념관에서 결혼을 치룬 신랑신부들은 아마도 부부생활을 전쟁치르듯이, 전투적으로 할 것이 틀림없다. 이 얼마나 웃기는 아이러니인가 말이다. 부부생활을 전쟁적으로, 전투적으로 하다보면 끝내는 파경을 맞이하기 십상이다. 결국에는 갈라설 수밖에 없을 것이니 혹시 전쟁기념관에서 결혼식을 치른 부부들의 이혼율이 전국의 평균적 이혼율보다 높은 것은 아닌지 한번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러므로 '전쟁기념관'은 '전쟁역사관' 혹은 '전쟁 역사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마땅할 터이다.
천안삼거리를 지나 목천이란 곳에 가면 '독립기념관'이 버티고 서 있다. 이것도 웃기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민족이 언제 독립국가의 민족이 아닌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일본에 국권을 빼앗겨 36년동안 식민지노릇을 한 뒤 연합국의 전승으로 다시 나라를 되찾은 역사를 비로소 '독립'이라고 보는 단세포적인 사고가 ''독립기념관'을 만들었다.
독립이란 말 그대로 홀로 선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독립기념관은 '광복기념관'으로 개칭해야 마땅하다. 전쟁을 기념할 필요는 없지만 광복은 얼마든지 기념할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의 원래부터 독립국가의 민족이었고 일제의 강점하에서도 우리는 독립된 나라의 민족이었다. 나라를 빼앗기고도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광복군을 조직하여 일본과 맞선 것이 그것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이 역시 세계사에서 유일한 사례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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