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는 세월은 늘 아득하고 덧없다.
그것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일찍 예비하고 암시한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무심코 흘려보낸 것일 때 그 덧없고 아득함은 무섭도록 막막하기 조차하여 때로 소름이 돋기도 한다.
"천천히 꼭꼭 씹어
많이 묵거라!"
이것은 어머니의 변하지 않는 식사법이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늘 내 밥상머리에
서성거리며 맴도신다.
먹는 것이 그리하여 연명하여 살아 내는 것이 절대절명, 지고지순의 명제인 알가난(赤貧)의 시대가 있었다. 그 시절로 부터 지금까지 '천천히, 꼭꼭, 많이' 는 어머니의 恒用副詞다. 사람구실 제대로 한번 한 적이 없는 나는 어릴적 부터 지천명이 넘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늘 이 말을 듣고 산다. 그러나' 천천히, 꼭꼭 ,많이'를 한꺼번에 하기는 참으로 쉽지가 않다. '천천히'와 '꼭꼭'은 상호보완적인 것이나, '천천히'와 '꼭꼭' 과 '많이'는 상호배반적인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생의 내공이 그리 깊지 못한 나로서는 그 중 한 가지 하기도 벅차다. 아직도 식탐을 버리지 못한 까닭에 '많이'만 가끔 할 뿐이다.
그것은, 어무이(어머니의 사투리)의 그 항용부사는 세상을 살아가며 사람을 대하는 일종의 哲理와 다른 것이 아닐 것인데 그저 먹기에 바쁜 어린 시절, 나는 오로지 '많이"와 '천천히'의 반대인 '빨리'에 몰두하고 있었다. '꼭꼭'은 나이들어 위장의 기능이 다소 약해진 요즈음 억지로 실천하는데 세살쩍 버릇 여든 간다고 아직도 그 速食의 버릇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물리적 외압으로 식사에 관한한 '천천히'라는 단어가 '오만한 사치' 혹은 ' 고문관의 고질적 弊習'과 바로 통하던 군대시절에 내 속식의 버릇은 절정을 맞이했다.
형제가 많은 가난한 집안의 밥상은 항상 그자체로 하나의 '작은 戰場'이기 일쑤였다. 예컨데 명절을 전후하여, 혹은 아버지의 생신에 고기반찬이 오르던지, 미군 부대에서 나온 햄이나 소세지가 '양키시장'의 미로와 같은 우여곡절(迂餘曲折)을 유통하여 우리 집 김치찌게의 돼지비계사이에 숨어 들 상황이면 거의 사생 결단, 전면전수준으로 擴戰되곤했다. 심지어는 된장찌게에 썰어 넣은 감자 토막을 놓고 우리 사남매는 치열한 '수저전쟁' 벌이곤 했다. 그러나 그 절묘한 상황을 가슴으로 이기지 못한 나는 늘 처절한 패배자였다. 체념의 미학으로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 난 도리를 다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어머니의 그 항용부사 '천천히, 꼭꼭, 많이' 는 세상을 살아가는 소중한 이치임을...
나는 오늘도 하루 세번 밥을 대하며, 때론 홀로 술을 대하며 습관처럼 굳어진 달리기를 하면서 어머니의 그 항용부사를 이제는 고운 티 모두 벗어버린 늙은 얼굴과 함께 떠올린다. 그리고 그 소중한 이치를 일찍이 지키고 따르지 못했슴을 悔恨하며 가끔은 몸서리 치곤 한다.
이제는 마라톤도 '천천히, 꼭꼭, 많이'할 나이가 되어버렸다. 어머니의 식사법이 사람노릇 제대로 못하고 사는 아들의 주법(走法)으로 승화될 때까지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러버렸다.
그리하여,
되돌아 보는 세월은 늘 아득하여 덧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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