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구 신월 6동 경로식당의 점심은 이르다. 늘 이르다.
양천구 신월6동 인근 동리에 거주하시는 경로연금대상자와 생활보호대상자에게 한끼 따뜻한 점심을 제공하는 신월6동 경로식당은 10시 30분이 넘으면 고슬고슬 갓지은 구수한 밥냄새가 퍼져나가고 아침을 거른 어르신네들이 한분 두분 모여들기 시작한다.
식판에는 갓지은 하얀 쌀밥에 1汁 3饌(국한그릇과 반찬 3가지) 이 담긴다. 오늘의 메뉴는 두부, 호박, 감자를 썰어넣은 된장국에 김치, 동그랑 땡, 가는채 무침이다. 식판을 받아 자리를 잡으신 어르신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한끼 '거룩한 식사'에 몰두하신다. 벌써 몇년째 이곳 경로식당에서 영양사로 봉사하고 계시는 차선희님은 벌써 어르신 얼굴만 보면 양의 적고 많음, 반찬의 선호상태를 파악하여 식판에 밥과 반찬을 더 담거나 덜거나 하며 조절을 하신다. 부자집 맏며느리처럼 후덕한 인상을 지닌 차영양사님의 마음씀씀이가 넉넉하고 정답기 그지 없다.
인생의 하오를 지나 황혼녘에 접어 든 어르신들은 대부분 하루에 점심 한 끼만으로 연명하신다고 한다. 부양할 자식이 없거나 자식이 있어도 사실상 '버림'과 같은 무관심으로 홀로 신산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빠른 이유가 이에서 비롯됨을 알아 챈 나는 가슴이 짜안해졌다.
오호라! 삼순구식(三旬九食: 한달에 아홉끼만 먹음)이 적빈(赤貧)의 옛 세월을 드물게 떠돌던 전설인줄만 알았더니 이 풍요를 주체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 '복지사회' 바로 우리 이웃의 일상이었구나 !
한해 2조원이 넘는 음식물 쓰레기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 2005년 봄, 대한민국의 '먹고 사는 문제'의 현실일 것인데 하루에 한끼, 이른 점심만으로 인생의 황혼을 고적하게 지내야 하는 이 노인들은 '우리의 문제'에서 언제까지 소외되고만 있을 것인가?
밥을 마주 대하고 있는 어르신들은 일체 말씀이 없다. 그저 '진지'를 하시는데만 성심성의를 다해 전념하실 뿐이다. 대부분이 할머님이신데 할아버지 몇분은 안쪽 방에서 자연스레 따로 모여 드신다. 아마도 內外하는 美德이 습관화 된 탓일 것이다.
한끼를 에워 하루를 견뎌내야 하시는 어르신들이 밥을 대하는 표정은 진지하다 못해 엄숙하고 비장하기까지하다. 이 한끼 거룩한 식사를 마치면 다시 만 하루가 지나야 그 구수한 밥냄새로 '쓸쓸한 황혼의 허기'를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속에서 오로지 수저를 놀려 밥을 입으로 옮겨가는데만 열중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생존이라는 일상의 제의(祭儀)를 치르는 '거룩한 성자'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주방에서 식판에 밥을 퍼고 반찬을 담던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밥의 거룩함'에 가슴이 저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먹고 사는 일'이 그렇게 절실하고 소중하며 거룩한 것임을 새삼스레 절감했기 때문이다.
치아상태가 부실하신 어르신들은 대부분 국에다 밥을 말아드신다. 그러나 한분도 밥을 남기시는 분은 없다. 마른 반찬은 비닐봉지에 싸가지고 가시기도 한다. 후식으로 내 놓은 방울토마토와 준비해간 시루떡을 소중하게 싸가지고 가시며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고 찬사를 하시며 나가신다. 그러나 저 조그마한 음식이 이 긴 봄날의 허기를 어찌 감당이나 할것인가?
설겆이를 하고 그래도 이른 점심을 먹고 식당 청소를 끝내고 나온 나는 슬프고 부끄러웠다.
우선 여러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팔순이 다 된 노모를 직접 거두어 모시지 못하고 백세의 외조모와 함께 정릉 옛집에서 따로 살게 하는 나의 불효막심함이 슬프고 부끄러웠다. 하루에 한끼로 연명하시는 저 어르신들과 나의 노모가 무엇이 다를 것인가? 홀로 지내는 시간의 그 적막함이 어찌 서로 틀릴것인가!
선진사회, 선진국, 복지사회의 온갖 구호가 난무하는 가운데 하루에 한끼만으로 버려진 삶을 연명해야만 하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같은 어르신들을 대해야 하는 현실이 슬펐고 영양과잉으로 온갖 질병에 시달리거나 무리한 다이어트를 결사적으로 감행하다가 죽어나자빠지는 내 이웃이 즐비함이 괴로웠으며 아직도 식탐(食貪)으로 과식을 하거나 맛있는 美食을 가끔 고집하는 내 '철없는 지천명'의 나이와 반찬투정하며 편식을 일삼는 내 아이들 버릇하나 제대로 고쳐놓지 못하는 '무기력한 아버지'임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어디 그 뿐이던가! 때로 마라톤대회를 앞두고 식이요법을 한다고 유난을 떨거나 대회날 이른 아침은 꼭 찰밥이나 닭가슴살로 육수내어 인삼 대추 마늘 찹쌀을 넣어 끓인 죽을 고집하여 마누라의 일요일 새벽 단잠을 망쳐 놓은 이력이 있는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한없이 무참하였다.
옛 말에 이르기를 '백성은 먹고 사는 것으로 하늘을 삼고 임금은 백성들로 하늘을 삼는다 (民 以食爲天, 君 以民爲天)'이라 하였으니 이 두마디 글을 합쳐서 생각컨데 '먹고사는 것이 곧 하늘'이리라.
지하철이 지상구간으로 나오니 오월의 햇빛아래 신록이 기름먹인 것처럼 반지르하고 푸르다. 어느 새 봄은 그렇게 속절없이 지고 있었다.
아! 먹고 사는 일의 소중함이여!
밥의 거룩함이여!
비우고 나누는 삶의 아름다움이여! (200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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