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1.11.18 + 작 성 자 : 이동윤
+ 제     목 : 달려갈수록 고통의 날카로움은무뎌진다
+ 파일첨부 :

달리기는 걷기처럼 지극히 본질적인 것에만 이 세상을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위에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옷과 모자, 장갑과 신발 등 가장 기초적인 것들만으로 준비를 한다, 그 이상의 군더더기는 괴로움과 땀과 짜증을 가져올 뿐이다.

달리기는 불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벗어버리는 훈련이다. 걷기나 달리기는 우리들을 세상과 직접 대면하게 만든다. 걷거나 달리는 기술은 상징적인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길의 자력에 발을 맡기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강물이 구불구불 흘러가지만, 그렇게 흐르는 동안 줄곧 고집스럽게 바다로 가는 가장 짧은 지름길을 찾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시선을 그 본래의 조건에서 해방시켜 공간 속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 속으로 난 길을 가게 한다.

운동하는 동안 만나는 모든 것들을 다 받아들여 수용하고, 그 모든 것과 다 손을 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나아간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길만이 드러난다.

외부의 자연과 길이 내면의 풍경과 마음과 하나가 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평범한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아무도 그 길을 따라오지 않고, 그 길 역시 밝아오는 날과 함께 새롭게 태어난다.

저 건너편 산 아래 마을이 잠에서 깨어나 존재의 세상으로 등장하기 위해 우리를 기다린다. 저 멀리 길게 이어진 길을 바라볼 때마다 길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나무만이 아니라 무지개처럼 타오르는 빛과 순수한 정신과 존재감, 지성이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나에게는 길에서 만나는 장애들, 즉 추위와 더위, 눈과 비, 서리와 고개 등 넘기 어려운 과제들이 평온한 마음을 떠보려는 세상의 시험이라고 여겨져 아직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사물의 핵심을 향한 내면적인 여로의 이정표라고 생각된다.

길을 가다 보면 세상이 거침없이 그 속살을 열어 보이고 황홀한 빛 속에서 그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것은 어떤 개인적인 변신의 문턱 같은 것이다. 나의 발걸음과 키높이에서 세상을 발견함으로써 내 본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삶과 마찬가지로 걷기나 달리기는 예측할 수 있는 일들보다는 더 많은 불가해한 일들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자초지종은 나로서는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한 시간 동안 힘겹게 달리며 뛰어 오르고 미끄러지고 또 뛰어 오르면 숨까지 헐떡거리게 된다.

마침내 기진맥진한 채 마지막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빛나는 햇빛 속에서 서늘한 바람에 머릿속을 식히려 모자를 벗는다. 기쁨에 넘치면서도 쓰러질 듯 피곤함을 느끼는 두 세상 사이의 좁은 모서리 위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피곤함 속에서 고통을 녹일 정도의 힘과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한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다음글 :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강요하면 안 된다
이전글 : 과거를 옹호하지도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