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모르는 것(무지)과 알은 체하지 않는 것(무시)의 두 가지 정신 상태는 모두 문제를 일으키지만, 또 나름의 쓸모와 이점도 있으며, 오늘날 우리 사회, 우리 문화, 우리의 지적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무지가 그 자체로 하나의 덕목으로 대접받을 때 또는 지식의 소비를 통해 탈출해야 할 수치스러운 상태로 보일 때 그것은 위험하다. 반대로 우리가 누구이고 세상에서 우리의 자리가 어디인지 이해하여 할 때 무지는 자연스러운 완충 장치를 제공할 수 있다.
무지는 전문가의 전문 지식이 더 나아갈 수 없는 지점을 표시해주는 효과가 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요즘 코비드-19 팬데믹 방역에서 보듯이 우리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사람들에게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에 경계를 설정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뭔가를 무시하는 행위 또한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때로는 명백해 보이는 것의 부인이 생존을 좌우하는 전략이 될 수도 있다. 또 부인이 모욕적 관계와 압제적 위계를 떠받치는 집단적 공포를 영속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지는 또 그런 권력 구조를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그럼으로써 그것을 악화시키거나 심지어 무너뜨리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진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산업사회에서 무지의 형태들이 만들어진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무지와 부인을 선택하는 방식이 개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항상 동반된다. 건강과 관련을 맺으면서는 자신의 병, 이용가능한 의료시술의 범위, 그 위험 등에 관해 거의 완벽한 정보를 얻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수술이나 입원 등의 동의서를 쓰는 경우에 선 정보고지 후 동의를 하지만, 실제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에 직면할 경우는 눈을 감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유형의 지식이 등장하면 로맨틱한 관계를 맺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애정의 잠재적 대상에게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라는 조언을 듣기도 한다. 현대의 고도로 개인화한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목하지 않고 사회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무지가 상호 주관적 수준에서, 특히 자신을 무시하는 여성들 때문에 연애를 할 수 없다는 비자발적 금욕 상태에 놓인 남자들이 사랑과 증오에서 성적 혐오 발언이나 무고한 사람들을 신체적으로 공격하는 방식으로 눈에 띄는 존재가 되려고 하기도 한다.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무능, 불안, 죄책감으로 변질되어 마음 속에 쌓인 감정이 원인이 되어 신자유주의적 성공 이념이나 정확성을 판별하기 어려운 가짜 뉴스들에 종종 등장하는 '마초' 이미지에 연결되어 무지를 사회적으로 확대하게 된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올해 마지막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