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겨울에 명퇴한
전직 은행 지점장이자 나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던
김 아무개씨는
2000년 4월 도봉산에서 죽었다.
망월사가 내려다 보이는 칼바위 밑으로 추락하여 즉사한
김아무개씨의 배낭에는
서울 막걸리 장수 빈병 4개와
반쯤 비워진 병 1개
먹다 남은 방울토마토 몇알이 담긴 락엔락 밀폐용기등이
담겨있었다.
오전 6시 다락능선을 기어 올라 신선대에서
휴식한 김 아무개씨는
실업으로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을 한탄하며
막걸리를 마셨는가 보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서울 마걸리 -장수 4통 반을
마시게 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아마 죽고 싶도록 외로웠나보다.
포대능선을 따라 하산하던
그는 휘청거리는 몸을 칼바위위에 얹었다.
(...)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 막걸리 -장수 빈병들이
침묵의 유서인지 알길 없는
경찰은 타살로 추정했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절대고독과
살아온 세월의
덧없음과
그 비정함을
그를 타살한
용의자로 세상에
수베했다.
산이 이러하고
또 술이 저러 하며
산과 술이 저토록
어우러지나니
모진 세월이 겁을 주며
고문처럼 술을 권하더라도
산에서는 과음하지 말 일이다.
서울 막걸리 이름이 암만 장수라도
장수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므로
나는 그를 찿아
그 황량한 세월과 괴롭게 싸우는 친구를
자주 찾아 위로하고
그리하여 가끔은
같이 망가지지 못했음을
마음으로 후회했다.
빈소에 막걸리는 없었으므로
유족들에게 장수 막걸리는
원수같이 보였을 것이므로
죄없는 소주를 밤새 질금거리며
가슴으로 울었다.
그의 주검앞에 앉아 울면서
술의 힘을 빌어 겨우, 그러나
각별히 弔喪했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가리라
서울 막걸리-장수 ,
한 댓통 마시고
덧 없이 바람 불어제끼는
세상에
하염없이 널린 포대능선이며
덧없이 솟은 칼바위 타다가
그리 가리라!
|
다음글 : 
이전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