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에 대응해서 발생하는 반응들은 우리 몸이 스스로 오래 전부터 정교하게 만들어온 적응행위이다. 하지만 현재 사회에서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장거리를 움직일 필요가 없어지면서 저장 에너지를 사용할 기회가 없다.
그러므로 마치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것처럼 의식적으로 신체적 활동을 하여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몸은 정기적으로 활동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다면 적절한 활동량은 어떻게 결정되었을까?
초기 인류 시절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의 삶의 기본은 사냥과 채집활동을 통한 식량의 획득이 주된 방식이었다. 즉 강도 높은 신체활동을 한 뒤 얼마간 휴식하는 방식, 즉 폭식과 기아가 반복되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엇다.
1세기 전의 조상들이 했던 신체활동량을 계산해서 현재 우리들의 운동랭과 비교해봐도 문제가 명확해진다. 우리의 에너지 소모량은 조상들의 38%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듯이, 현대인들을 조상들에 비해 상당히 많은 칼로리를 섭취한다는 의미다.
정부에서 권장하는 운동량 가운데 가장 강도 높은 방식으로 매일 30분 운동을 한다고 해도 유리 유전자에 내장된 에너지 소모량의 반도 사용하지 못한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단순히 식량을 구하기 위해 하루 평균8~16km나 걸어야 했다.
요즘은 식량을 구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을 뿐더러 다음에 먹을 양식을 어디서 구할지 궁리하기 위해 머리를 쓸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런 생활을 하게 된 것도 불과 2세기 전이지만, 그런 생물학적 진화는 수만 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바로 이 차이점이 우리의 생활방식과 유전자의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 유전자는 저축심이 왕성하므로 우리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끊임 없이 에너지를 비축한다. 비상호르몬인 코티솔을 차단함으로써 뱃살을 빼준다는 광고도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배는 기아가 닥칠 때를 대비해 에너지를 저장해두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할 뿐이다. 만성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저장된 에너지가 배 주변에 자동차 바퀴모양으로 쌓이게 된다. 그렇데 되면 보기에도 별로 좋지 않을 뿐더러 건강에도 해롭다.
저장된 지방이 종종 심장으로 거슬러 올라가 동맥 경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상황을 겪은 뒤에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음식을 간절하게 원삼으로써 지방 축적을 더 부추기게 된다. 우리 몸은 포도당을 더 달라고 안달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섭취한 탄수화물과 지방은 손쉽게 에너지 연료로 전환된다. 요즘은 대가족이라는 가족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음으로 친구가 별로 없고 주위로부터 도움도 받지 않는다. 그냥 혼자서 생활하는 것이 뇌에 이롭지 않다.
과학자들이 쥐에서 생리적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무리로부터 떼어놓는 것이다. 단순 격리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은 활성화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거나 고립된 생활을 하면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운동을 삶의 일부로 만들면 사회적 홛동이 더욱 활발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운동이 자신감을 높여주고,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를 제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운동을 통해 생겨나는 활력과 의욕은 사회적인 연결망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일을 하지 않고 쉬려는 욕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지방과 당분을 듬뿍 함유하고 있는 음식을 섭취하여 기운을 회복하려 하거나 술로 긴장을 풀기도 한다.
마약이나 중독성 물질들로 위안을 찾으려다가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방법들 대신에 운동을 하거나 최소한 다른 사람들고 교류를 하는 것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훨씬 더 진화된 수단이 될 수 있다. 규칙적 운동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아름다운 목요일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